‘고리’ 서민 우는데 ‘저리’ 대기업 직원은 미소 [주택금융시장 양극화 심화]
주담대 8%대 진입 시간문제
대출규제 겹쳐 실수요자 막막
삼성전자 1.5%대 대출 도입
사내대출 각종 규제 자유로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8% 수준까지 치솟은 가운데 일부 대기업 직원들은 저금리 사내대출을 받을 수 있어 주택금융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부산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단지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상승세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실수요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 역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8%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정책금융상품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반면 일부 대기업 직원들은 저금리 사내대출을 통해 수억 원 규모의 주택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주택금융시장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연 6% 후반에서 7% 중반 수준까지 형성돼 있다. 실제 은행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39~7.33%로 집계됐다. 5대 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 상단이 7.3%를 넘어선 것은 2022년 10월 말(7.33%) 이후 약 3년 8개월 만이다. 올해 들어서만 금리 상단이 1.10%포인트(P) 상승했다.
문제는 주담대 금리의 지표가 되는 은행채 등 시장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면서 대출금리 추가 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전망도 비슷하다. 씨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이 올해 7월과 10월, 내년 1월과 4월 각각 기준금리를 0.25%P씩 인상할 것”이라며 1년 뒤 기준금리를 3.50% 수준으로 전망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대출 한도가 축소되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 기준금리까지 추가로 인상될 경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8%대에 진입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예를 들어 5억 원을 연 7.3% 금리로 30년 만기 원리금균등 방식으로 대출받을 경우 매월 상환해야 하는 금액은 약 340만 원이다. 하지만 금리가 8.3%으로 오르면 원리금 부담은 약 380만 원으로 커진다. 사실상 직장인 한 달 급여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쓰이는 수준인 셈이다.
이처럼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정책금융 상품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모기지 상품인 보금자리론은 올해 들어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보금자리론은 연 소득 7000만 원 이하 가구가 6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할 때 이용할 수 있다. 신혼부부는 8500만 원, 다자녀 가구는 최대 1억 원까지 소득 기준이 완화되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보금자리론 공급 규모는 올해 들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연간 공급 목표의 절반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4월 보금자리론 판매액은 9조 6119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5조 238억 원)보다 91.3%나 급증한 규모다. 다만 공급 규모가 정해져 있는 데다 소득 요건 등 자격 기준이 적용돼 이용 가능한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 보금자리론 금리 역시 상승이 불가피한데 한도까지 빠르게 소진되면 실수요자 부담은 더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민들은 고금리와 대출규제의 이중부담으로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일부 대기업 직원들은 저금리 사내대출 등 안정적인 주거금융 지원을 받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최근 최대 6억 원의 성과급 지급과 별개로 무주택 임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5억 원 규모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제도의 금리는 연 1.5% 수준에 불과하다. 5억 원을 빌리면 연 이자가 750만 원에 불과한데, 은행권 주담대 금리와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SK하이닉스 노조도 회사 측에 비슷한 규모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최대 5억 원, 빗썸도 1억 원 한도로 무이자 대출이 가능하다. 금융공공기관인 한국산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등도 주택구입자금 등을 명목으로 저금리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제도가 결과적으로 주택금융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이나 회사 자체 재원으로 운영되는 사내대출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차주들이 은행 등에서 주담대를 받을 경우 가계대출 총량,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만 사내대출은 이런 규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 임직원들은 사내대출과 은행권 대출을 동시에 활용해 주택 구입 자금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반면 일반 실수요자들은 강화된 규제와 높은 금리 부담 속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대출은 막혔고 금리는 높아져 무주택자는 살 곳을 잃었다” “대기업 직원과 일반 직장인의 주거 사다리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지경에 달하고 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주택금융시장이 단순한 금리 문제를 넘어 계층 간 자산 형성 기회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금리와 강화된 대출규제로 금융자산이 부족한 청년층과 무주택 실수요자가 큰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현금 여력이 충분하거나 회사 차원의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주택 매입 기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집값 상승기에는 자금 조달 능력이 곧 자산 증식 능력으로 연결되는 측면이 크다”며 “주택시장의 양극화 못지않게 주택금융 양극화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