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선관위원장 사퇴로 끝날 일 아니다
부산·울산 등 전국 곳곳서 참정권 훼손
해체 수준 개혁·엄정한 사법처리 절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사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파문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봉쇄 시위가 7일에도 사흘째 이어진 것은 물론 전국적으로 국민 참정권 훼손에 반발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유감 표명과 함께 “명확하게 책임을 묻겠다”라는 의지를 밝혔지만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더욱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과 울산 등 전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선거를 관리하는 독립된 국가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하고 안일한 업무 방식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전국 투표소 1만 4288곳 가운데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곳은 서울 35곳, 부산 8곳, 울산 3곳, 대구 7곳 등 67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의 경우 중구(영주 2동), 동구(범일2동), 부산진구(당감1동), 남구(용호1동), 북구(금곡동, 화명1동). 금정구(구서2동), 수영구(수영동)가 인근 투표소로부터 용지를 추가 조달했다. 이로 인해 화명1동 제7투표소에서는 투표 종료 시각 이후에도 투표가 이어졌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중차대한 사안이다.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선관위의 변명은 그 자체로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지난 5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퇴했으나 규탄 집회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7일 오후 2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데 이어 부산에서도 부산시선관위 앞에서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100여 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한 전국총학생회협의회도 선관위의 직무 유기를 비판하는 규탄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도 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늘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키로 한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이번 사태의 엄중성을 감안할 때 여야가 다시는 이 같은 참담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본질적인 방지 대책 마련에 함께 힘을 쏟길 당부한다.
선관위는 경력직 공무원 채용 규정을 위반하는 등 그동안 숱한 물의를 빚었다. 선거 관리 부실 지적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헌법기관이라는 무소불위의 지위 덕분에 감사 제외 기관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이번 사태도 외부 감사 부재가 초래한 방만함 때문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여야는 법 개정을 통해 선관위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선거 때만 가동하는 비상설 조직으로 재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제 역할도 못하면서 혈세만 낭비하는 선관위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하고 특검 도입 등을 통해 관련자 전원을 사법처리하는 것만이 국민 불신과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