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산을 높이는 질문, 산을 내려오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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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버디 대기업 프로 재택러

한 줄 스펙 쌓느라 분주한 삶
끝없이 증명하려는 욕구일 뿐
정작 목마른 건 되레 '안도감'

어떻게 더 잘 해볼까 불안한가
내려놓아야만 깊이가 생기며
거기가 바로 '안도감'의 자리

브리아나 위스트는 그의 책 〈마운틴 이즈 유(The Mountain Is You)〉에서 서늘한 비유를 던진다. “산이 두 지각판의 충돌로 솟아오르듯, 당신의 산도 공존하면서 서로 충돌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구와 그 자리에 머물려는 욕구가 부딪칠 때, 사람은 스스로 제 발목을 잡는다. 위스트는 이 익숙한 자기 파괴(self-sabotage)야말로 우리가 매일 오르는 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유난히 많은 이들이 이 산을 오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무언가를 쌓느라 분주하다. 자격증, 영어 점수, 사이드 프로젝트, SNS 브랜딩까지. 한 줄의 스펙을 더하려 어제보다 오늘 더 부지런히 달린다. 외국계 기업에서 홀로 모니터를 마주하며 일하는 나 역시 오래 그 대열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위스트의 질문법으로 그 분주함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꽤 충격적인 답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안정감에 집착하고 있다.

이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어지러운 속도다. 어제의 필수 역량이 오늘은 한물 간 것이 되고, 새로 익힌 도구가 채 손에 익기도 전에 더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흐름 하나를 겨우 따라잡으면 세상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솔직히 이 숨 가쁜 추격전은 흥미로운 동시에 멀미가 난다. 무엇을 더 쌓아야 안전한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데, 모두가 멈추면 큰일 날 것처럼 무언가를 쌓고 있다. 그렇게 트렌드의 속도는 ‘뒤처지면 끝’이라는 공포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우리는 그 공포를 잠재우려 또 한 줄의 스펙을 보탠다.

오늘날 청년 세대를 움직이는 동력은 ‘끊임없이 증명하라’인 듯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목말라하는 것은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이다. 정반대를 원하는 두 욕구가 부딪치니, 아무리 결과로 확인받아도 산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 영어 점수도, 관리하는 몸도, 통장 잔고도, 취업도, 전문성에 대한 갈망도 실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다.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나는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한 가지 욕구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더 깊은 자리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더 커진 뒤 감당해야 할 책임과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웅크리고 있다.

증명 욕구는 의외의 곳에도 숨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정보를 좀처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좋은 글과 유용한 영상, 남들이 본다는 트렌드를 끊임없이 저장하고 갈무리하며 뿌듯해 한다. 그러나 그 부지런한 기록의 상당 부분은 배움이 아니라 ‘놓치면 뒤처진다’는 불안에서 나온다. 쉬는 일조차 편치 않은 이유도 같다. 게으름을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 자체를 낯설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깊이 살아내는 삶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 부쩍 자기 정의(self-definition)라는 말이 귀해졌다. 사람들은 ‘OO형 인간’이라는 신조어나 몇 개의 해시태그 키워드에 자신을 욱여 넣으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 빠르게 규정하고 안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이해가 아니라 자기 분류에 가깝다. 진짜 자기 정의란 그럴듯한 라벨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어떤 기준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만이, 트렌드가 아무리 바뀌어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불안이 솟을 때 묻는 질문을 바꾸면 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까’ 대신 ‘내가 왜 여기서 불안을 느끼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다. 전자는 끝없이 산을 높이는 질문이고, 후자는 비로소 산을 내려오게 하는 질문이다. 위스트는 책을 이렇게 끝맺는다. “결국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다만 산을 내려온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 증명 욕구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게으른 휴식이 아니라, 의외로 또렷한 방향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적은 사람과 깊이 연결되는 삶. 수만 명에게 끊임없이 나를 입증하기보다 단 몇백 명과 진짜로 가닿는 일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값지다는 감각이다. 자기 정의란 결국 ‘무엇을 그만 증명할지’를 고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넓이를 향한 욕망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깊이를 향한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상이 당신을 한 줄의 스펙으로 줄 세우려 할 때,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정의하는가. 더 정확히 묻고 싶다. 당신이 오늘도 넓히려 애쓰는 그것은 정말 당신이 닿고 싶은 깊이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한 번도 채워지지 못한 안도감을, 더 많은 사람의 인정으로 메우려는 먼 우회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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