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자지구, 인류의 양심이 시험받는 곳
복진세 수필가·칼럼니스트
지난달 22일 새벽 6시 24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활동명 ‘해초’, 김아현 씨였다. 그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억류 흔적이 역력했지만,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구타를 당해 한 쪽 귀가 잘 안 들립니다.” 그 말 한마디가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가자지구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한 인도주의 위기의 현장이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전면 군사 작전이 시작된 이후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4만 6000 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는 1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인구 230만 명 가운데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길에 올랐다. 병원과 학교, 주거지는 폭격 속에 무너졌고, 전력과 수도, 의약품 공급은 오랫동안 끊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실제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어린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환자들은 마취제조차 부족한 수술대 위에 눕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전쟁의 부수 피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물자 트럭을 조직적으로 차단해 왔고, 공해상에서 구호 선박을 나포하며 인도주의 지원 자체를 봉쇄의 수단으로 삼아 왔다. 굶주림마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현실 앞에서 국제사회의 언어는 너무 느렸고, 너무 무력했다.
그 봉쇄의 벽 앞에서 세계 곳곳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나섰다. 약 40개국 430여 명의 민간 구호 활동가들이 선박 50여 척에 나눠 타고 가자지구를 향했다. 직업도,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이들이 배를 탄 이유는 하나였다.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 있겠다는 것, 그리고 국제사회가 외면하는 자리를 자신의 몸으로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국가의 지원도, 조직의 보호도 없이 오직 인류애 하나로 망망대해에 몸을 실었다. 그 용기와 헌신은 아무리 치하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아현 씨는 그중에서도 남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이미 지난해 10월에도 같은 길을 나섰다가 이스라엘군에 체포된 뒤 석방됐다. 외교부는 그 일을 계기로 그녀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다시 배를 탔다. 막혀도, 잡혀도, 구타를 당해 귀가 들리지 않아도 그녀는 “가자가 해방될 때까지 언제나 다시 갈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민간 구호 활동의 진정한 의미다. 국가가 외면할 때, 외교가 침묵할 때, 한 사람의 양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선의조차 짓밟았다. 지난달 19일, 키프로스 인근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은 함대를 강제 나포했다. 유엔해양법협약이 명백히 금지하는 행위였다.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수감 시설을 직접 찾아가 손이 묶인 채 무릎을 꿇은 활동가들을 향해 국기를 흔들며 조롱했고, 그 장면을 SNS에 올렸다.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라는 말과 함께. 한 나라의 장관이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 구호 활동가를 무릎 꿇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 나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 총리’에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민간인 보호를 명령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자지구의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빵 한 조각을 가져다주려다 구타당하고 돌아온 김아현 씨는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녀와 함께 배를 탔던 40개국의 활동가들, 가자지구 안에서 목숨을 걸고 수술칼을 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 법정에서 팔레스타인의 편에 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호사들. 이들이 있어 인류의 양심은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을, 이름 없는 개인들이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그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침묵은 곧 공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