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 거친 입을 다물라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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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사회부 차장

美 코미디언 하버드대 졸업연설 화제
"트럼프, 공감하면 약하다고 생각해"
지방선거 전 여야 정치인 설화 반복
성찰 없는 정치인의 말, 국민에겐 고통

“우리는 지금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의 패’를 마치 자신이 타고난 ‘천재성’ 덕분인 양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워싱턴을 이끄는 지도층은 ‘공감하는 것’이 곧 ‘약한 것’이라고 믿는 듯합니다.”

지난달 28일 미국 유명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이 화제다. 코난 오브라이언은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로 30년 넘게 미국 심야 토크쇼를 지배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워싱턴을 이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공감 능력을 잃은 권력’으로 정의했다.

이날 하버드대 졸업생들과 시민들은 마가(MAGA)를 내세우며 관세 전쟁에서 동맹국을 무시하고, 이란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대학에 지원금을 끊은 트럼프에 대한 일갈에 환호했다. 20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은 폭소로 채워졌다. 그의 한마디에는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오브라이언의 진단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일부 권력자들이 내뱉는 거친 언어와 판단에 한국 국민들도 고통받고 있다. 6·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대한민국 정치가 바로 그 현장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한국 정치인들의 말실수는 너무 많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는 지난달 3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에서 유세 도중 한 초등 1학년 학생을 만난 자리에서 40대 후반인 하정우 후보에게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부르도록 유도해 비판을 받았다. 교육·여성 단체들은 아동학대 혐의로 정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정 대표와 하 후보는 “상처받았을 아이와 부모님께 송구하다”며 사건 당일 밤 SNS에 사과했다.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자 국회 의석을 3분의 2 가까이 가진 거대 정당의 대표의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터진 ‘5·18 탱크데이’ 사태에 대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발언 역시 공감 능력이 있는 발언으로 보기엔 어렵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부정하는 듯한 마케팅을 벌인 스타벅스에 항의했다. 국민들은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나서며 강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달랐다. 장 대표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적힌 붉은 앞치마를 하고 선거 운동에 나섰다. 그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이재명과 민주당을 심판하자”고 호소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인증샷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장 대표를 포함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언행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유가족과 시민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26일 3명이 숨진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마저 선거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 이들도 있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 마포구청장 후보는 “우리 마포는 4년 동안 단 한 건의 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고 내뱉었다. 한 가정의 가장 3명이 숨진 안타까운 사고조차 자신의 정치에 악용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절망해야만 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 지지자들이 ‘이번 사고는 선거에 호재다’라는 비정한 글을 올려 논란을 샀다.

오브라이언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착각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천재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착각이 공감 능력을 죽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감을 잃은 권력이 언어를 더욱 타락시킨다고 진단했다.

이 진단은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 국회, 지방정부·의회에서 권력을 갖는 과정에는 본인의 능력만큼이나 시대적 흐름과 상대의 실책 등 엄청난 운이 작용한다. 권력은 국민이 잠시 맡긴 것일 뿐, 전유물이 아니다. 그 권력에 취하는 순간 참사 앞에서 치적 자랑을 늘어놓고, 역사적 비극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들이밀고, 아이에게 부적절한 호칭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말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의 말은 법이 되고 예산이 되고 누군가의 삶이 된다. 그들의 말 한마디로 민심은 돌아선다. 공동체는 반쪽으로 갈라진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고들 하지만 그들의 입이 무거워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을 향한 정치인들의 언어에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성찰 없는 정치인의 말은 국민들에게 고통일 뿐이다. 선거 무대의 주인공은 함부로 말을 뱉는 정치인이 아니다. 시민들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이젠 그 거친 입을 다물라.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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