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연의 도시 공감] 시장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주)로컬바이로컬 대표
물건·사람 모인 경제·문화 중심지
하지만 시대 변화로 활력 떨어져
'도시의 거실'로 재탄생 서둘러야
지난 주말 오랜만에 경남 통영을 찾았다. ‘푸드 스케이프’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8시에 도착한 서호시장에서 붕장어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먹었다. 낯선 음식이지만 생선이 들어간 시원한 국물 덕분에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후식은 시장 끝 리어카 커피집에서 먹은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 한 잔이었다. 통영과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달콤한 커피를 마시는데 옆에 앉아있던 주민이 불쑥 “통영이 옛날 통영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돈이 안 돌아요”라고 한탄 섞인 말씀을 하셨다. 이 주민은 “그럼에도 시장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줄 서는 맛집들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마감을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을 걸으며 통영 식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통영 음식의 맛을 내려면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을 대변하는 것은 시장 떡집에서 본 진달래 밀키트였다. 진달래와 쑥을 듬뿍 넣어 찹쌀과 버무린 뒤 지져서 먹는 음식이었다. 설탕을 듬뿍 쳐서 먹어야 더 맛있다는 ‘푸드 스케이프’ 안내자의 말을 들으며 음식 실물을 직접 보니 통영의 푸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인근 동네 공유주방에서 어육장을 담그고 멸치 시락국, 조갯살에 무친 방풍나물 무침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어육장을 가르쳐 준 강사는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음식도 쉽게, 현실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무척 인상 깊었다.
과거 시장은 물건과 사람이 모이고 돈과 정보가 교환되는 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중심지였다. 생필품을 거래하는 경제적 기능 외에도, 전국 각지의 소식을 접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 창구였다. 그리고 자영업자와 지역 생산자를 연결하며 지역 내부를 순환시키는 경제 생태계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더불어 사회문화적 커뮤니티와 장소를 제공하여 지역민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곳이기도 했다. 덤, 흥정, 단골 문화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 특유의 ‘정(情)’과 인간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문화적 공간이 바로 시장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주차 공간 부족, 불편한 동선, 냉난방에 취약한 구조 등의 문제로 시설은 더욱 노후화되고 있다. 더욱이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이커머스의 성장 때문에 시장의 전통적인 유통 방식은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그리고 현대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 보증 및 신뢰 중심 서비스의 상대적 미흡과 상인 고령화 등으로 시장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나마 관광객들의 수요가 있는 일부 시장들은 맛집,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집객 효과를 거두고 있으나 대부분의 시장들은 침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침체는 도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존 도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시장이 쇠퇴하면 주변 상권과 주거지까지 함께 슬럼화된다. 도시 전체의 활력이 없어지는 연쇄 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
사실 시장은 그 도시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유일무이한 콘텐츠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낙후된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지역을 재생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농산물과 수산물 색상을 상징하는 67가지 색상의 육각형 타일 32만 5000개로 화려한 지붕을 만들어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외형뿐만 아니라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복합 커뮤니티 거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시장 부지 내에 노인 전용 공공 주택을 통합 운영하여 주민들의 생활 지원 및 돌봄이 이루어지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내에 박물관을 운영하여 바르셀로나의 도시 역사를 교육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통영과 같이 시장의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미식 투어와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 외 바르셀로나 전통시장 중 최초로 디지털 전환과 환경 보호를 결합한 주민 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지역 주민의 이용률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 내부에 현대적 폐기물 수집 및 처리 센터를 설치,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고 있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주거, 교육, 복지가 결합된 커뮤니티 허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장의 장소적 강점을 살려 사람들이 모이는 ‘앵커 시설’로 재탄생시킨다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창구의 역할이 가능해진다. 시장들이 디지털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문화·복지 시설과 결합된 근거리 생활권의 핵심 장소, 지역 커뮤니티들의 교류를 제공하는 일명 ‘도시의 거실’로 재탄생되었으면 한다. 이를 통해 시장 발 도시 활력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부산 지역 또한 현재 189곳의 전통시장이 있다. 부산의 각 지역 중심부에 위치한 시장들의 다양한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