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설치는 최대한 많은 사람 머물도록 공간 재설계하는 과정 [벤치가 바꾼 세계 도시 풍경]
하노이 관광청 트린 팀장 인터뷰
차량 점령 거리 시민에 돌려줘
구시가지까지 연결·확대 추진
하노이 관광청 바흐 트린 팀장이 호안끼엠 호수의 보행자 친화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시 관광청에서 호안끼엠 호수 관리와 관광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바흐 트린 팀장은 9년째 실험 중인 하노이시의 보행자 전용 거리 정책을 두고 ‘공간에 대한 시민 권리의 복원’이라고 정의했다. 오토바이에 점령 당했던 거리를 시민 공간으로 되돌리는 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하노이시가 2016년 처음 도입한 ‘차 없는 거리’ 정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험이었다. 9년 전 호안끼엠 호수 일대는 노점과 반려견, 보행자와 차량이 뒤섞여 하노이시에서도 가장 복잡한 교통 요충지였다. 오토바이가 주요 운송 수단인 베트남에서 도심 핵심 도로의 차량 진입을 100% 차단하는 것은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트린 팀장은 “오토바이 600만 대의 통행을 막는 초강수를 둬야 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든 도로 통제를 진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첫 시범 기간이었던 2016년엔 호수 주변의 딘띠엔황, 레타이또, 항카이 등 주요 거리를 보행자 전용 거리로 우선 지정해 주말 동안 운영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2019년 점차 시범 구역을 확대해 나갔다.
트린 팀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를 호안끼엠 호수가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한 변곡점으로 기억했다. 그는 “관광객 등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호안끼엠 호수를 관광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후 시민들이 실제로 머물 수 있는 벤치 등의 물리적 거점을 밭은 간격으로 배치했고, 벤치 설치가 어려운 구역에는 화단의 높이를 45cm 이하로 맞춰 어디든 걸터앉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재설계한 것이다.
팬데믹 이후 하노이 정식 명소로 자리매김한 호안끼엠 호수는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오토바이 교통체증 해소가 전국적 숙원인 베트남에서 차량이 전면 통제된 구역은 소음으로부터 휴식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위안이 됐다.
호안끼엠 호수는 휴식 공간의 의미를 넘어 하노이 최대의 문화·경제 허브로도 거듭났다. 주말마다 평균 2만 7000명, 공휴일에는 최대 4만 명이 모이는 인파가 낳은 결과다. 인근 숙박업소 예약률은 주말마다 95%를 상회하고, 식음료 매장의 매출도 평일 대비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정책 초기 차도 폐쇄에 우려를 표했던 상인들이 이제는 보행자 구역 확대를 먼저 요구하는 상황이다.
트림 팀장은 현재 하노이시는 이러한 성공을 발판 삼아 정책 확장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호수 주변 16개 구간에서 운영 중인 보행자 구역을 인근 구시가지 깊숙한 곳까지 연결해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앞으로의 전망을 밝혔다. 호수라는 랜드마크를 넘어 도시 전체를 유기적인 ‘보행 네트워크’로 묶겠다는 복안이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