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탄핵 부결 유감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경악스러웠던 계엄령 선포
적극 책임지려는 이 없어
윤 대통령의 파시즘적 사고
독단·불통·몰상식으로 점철
체계적 리더 양성 과정 부재
양심·염치는 최소한의 윤리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었다. ‘탄핵 트라우마’를 운운하며 투표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단체로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들에겐 국민들의 ‘계엄 트라우마’는 안중에도 없고 정권 유지에만 눈이 멀었나 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야당의 폭거를 알리려는 불가피하고 적법한 판단이었기에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변호만 늘어놓은 채 두문불출했고, 계엄을 건의한 인물로 알려진 국방장관은 해임 대신 면직되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위원 중 계엄 반대를 분명히 표명한 사람이 두어 명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와중에 영문도 모른 채 불려 간 군 장병들은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지난 역사에서 반국가세력이라는 구호와 계엄이 동반했던 폭력, 학살, 피 흘린 투쟁의 시간들을 한국인은 기억하고 있다. 탄핵을 부결시킨 여당 의원들도, 계엄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관료들도, 대다수가 민주화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어떻게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과 나라 살림을 운영한다는 사람들이 소신과 용기, 책임감 대신에 권력에 맹종하고 자기 안위 챙기기에만 급급한지 진심으로 개탄스럽고 국민으로서 수치스럽다.
이번 내란을 통해 윤 대통령이 정치적 판단력과 합리적 사고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탄핵 표결을 앞둔 몇 시간 전 2분짜리 대국민 담화에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며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계엄 사태는 결코 사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미 수차례나 뒤통수를 맞아서인지 이제 그의 발언엔 일말의 신뢰도 생기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하루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무능했고 참담했던 그의 리더십을 반추해 보는 것은 미래를 위한 과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파시즘 이론의 기초가 된 칼 슈미트 사상에 심취한 것처럼 들리는 발언들을 왕왕 해왔다. 슈미트에게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며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체다. 윤 대통령에게 자신과 이념이 다른 사람은 곧 적으로 간주되었다. 계엄을 통해서는 자신이 바로 대한민국 주권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로 여긴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극과 극이 통하듯 극우사상은 독재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편 윤 대통령의 실패는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그해 7월 30일 국민의 힘에 입당하여 이듬해 3월 9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바꿈에 단 1년이 걸렸고 정계에 첫 발을 내디딘 지 고작 7개월 만에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쯤에서 갑자기 억울해진다. 예컨대 청년들은 취직을 위해 인턴 경험을 쌓는 것이 필수가 되었고 다수의 기업들은 검증된 인재만을 뽑겠다고 경력직만 채용하는 시대다. 어째서 정치는 예외일 수 있겠는가. 검사 경력만 있고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그를 대통령에 앉힌 건 마치 신입사원을 최고경영자로 임명하는 도박과도 같은 일이었다.
모르면 열심히 배우기라도 해야 할 텐데 윤 대통령은 독단에 빠져 정치의 문법을 익힐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검사 시절의 신념을 고집하며 점점 더 몰상식해져 갔다. 보통 신입사원은 선배들의 업무 과정을 따라 하고 비교하며 기본을 갖추는 일부터 시작한다. 비교는 배움의 출발이고 사리분별의 기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친 비교의 폐단 때문에 그 가치를 경시하곤 하지만 뭐든지 적당함이 중요할 것이다. 정책 지지율이나 여론 비교 등 국정의 길잡이를 모두 묵살하고 마이웨이 독선에 빠졌을 때 과신과 만용으로 탄생하는 괴물을 보았다.
국가적으로 정치인을 길러낼 체계적인 리더 양성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문제는 더 심각해 보인다. 국회의원 자리는 보신주의자가 늘어가며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은 공천권을 가진 정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당 눈치를 보느라 국민 눈치는 까먹고 있다. 또 대통령 당선인을 배출해 여당만 되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대통령 후보자는 정책 능력이 아니라 이미지로 승부하는 떠들썩하고 허세 있는 한 편의 쇼가 국가의 리더 선발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소국의 스트롱맨 그릇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한국이 경제 대국인 건 맞지만 동시에 영토가 작은 나라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과 같은 강대국 스트롱맨들의 출현 속에 덩달아 한국도 마초맨을 뽑았는지 모르겠으나 그 그릇이 골목대장보다도 작았다. 한국 정세에 맞는 리더상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발 최소한 양심과 염치는 챙기는 인물 중에서 리더를 찾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