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랜 역사 동래 온천… 치병 온천 명성 [핫하다, 부산 온천]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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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왕·귀족 대표 휴양지
해운대 온천도 1000년 전 기원
1970년대 한국 대표 명소 명성

온천여관인 봉래관(현 농심호텔)의 1930년대 인공 호수 모습. 배를 띄우고 낚시도 할 수 있는 규모였다.부산일보DB 온천여관인 봉래관(현 농심호텔)의 1930년대 인공 호수 모습. 배를 띄우고 낚시도 할 수 있는 규모였다.부산일보DB

동래 온천과 해운대 온천은 한국 목욕 문화의 산실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래 온천은 삼국시대부터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뛰어난 ‘치병 온천’으로 명성을 얻었다. 뜨거운 온탕에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치유되고, 쌓였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고 여겨 수많은 욕객들이 동래 온천을 찾았다. 당시엔 욕탕에 많은 양의 온수를 한꺼번에 채우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온천지 외에는 온수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던 까닭이다.

삼국 시대 동래 온천은 왕과 귀족의 대표적 휴양지였다. 문헌상 동래 온천의 최초 역사는 683년 신라 신문왕 시절의 재상 충원공이 동래 온천에 다녀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신라의 왕들이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 김승 교수는 “조선 시대는 대군과 공주 등 왕실 종친과 대신들이 찾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고, 부산 왜관에 거주하던 왜인들을 비롯해 대마도에 거주하는 왜인들도 동래 온천에서 목욕하기를 소원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해운대 온천 역시 1100여 년 전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부터 기원이 시작된다. 천연두를 앓던 진성여왕이 온천욕 후 깨끗한 피부를 되찾았다는 일화도 있다. 구한말부터 일본인들이 온천을 발굴하고 여관을 세우면서 해운대 역시 점차 관광지로 변해갔다. 1934년 부산과 해운대를 잇는 동해남부선이 개통하면서 해운대 온천은 호황을 누렸다.

개항으로 부산 온천은 큰 변화를 맞았다. 온천을 좋아했던 일본인들은 동래 온천의 입욕권을 확보하고 온천을 개발했다. 이 때 각종 숙박·요식업, 별장, 공중욕탕 들어서며 온천은 관광과 유흥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래 온천과 해운대 온천은 질 좋고 풍부한 온천수, 잘 정비된 부대시설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온천지로 이름을 떨쳤다. 동래 온천을 연구해 온 역사민속학자이자 학예사인 부산근현대역사관 유승훈 운영팀장은 “1930년대엔 한 해에 부산 인구 13만 명보다 많은 16만 명이 욕객으로 부산 온천을 찾았을 정도여서 조선 대표 관광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을 정도”라면서 “부산의 온천은 우리나라 관광 역사의 본보기라고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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