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판결, 부산 변호사 4년 노력 있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법률사무소 동행 이현우 변호사
삼촌 부부에 유산 2억 원 뺏긴
30대 장애인 호소에 헌법소원
“늦게나마 피해 복구 가능 다행”

지난 27일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친족상도례’ 형법 328조 위헌소원 심판 모습. 연합뉴스 지난 27일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친족상도례’ 형법 328조 위헌소원 심판 모습. 연합뉴스

친족 간 재산 범죄 처벌을 면제하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최근 헌법재판소 판단에는 부산 변호사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법률사무소 동행의 이현우 변호사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30대 지적장애인이 동거 친족에게 수억 원을 뺏겼지만, 제대로 된 기소조차 못 하게 되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해 약 4년 만에 결과를 끌어 냈다.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던 지적장애 3급 장애인 A 씨는 2014년 아버지가 사망하며 유산 약 2억 원을 물려받았다. 당시 장례식장에서 만난 작은아버지 부부가 동거를 제안하며 2014년 12월부터 부산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A 씨는 논리적 사고나 명확한 의사 표현이 힘들었다. 돈에 대한 개념도 부족해 20년 넘게 창원의 한 농장에서 일을 했지만, 자신의 자산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작은아버지 부부는 이를 악용해 A 씨 상속 재산과 그동안 모은 급여 등을 수십 차례에 걸쳐 가로챘다. 이들은 A 씨 명의로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산 뒤 그 소유권을 자신의 자녀 명의로 옮기기도 했다. 이들은 2018년 10월까지 약 4년 동안 2억 3600여만 원을 가로챘다. 이들의 두 자녀에게는 어느새 집까지 생겼다. A 씨의 수중에는 빚 1억 원뿐이었다.

이 변호사가 당시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통해 사연을 접하고, A 씨의 공공후견인을 자처했다. A 씨는 이 변호사와 함께 작은아버지네 가족 4명을 준사기·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A 씨가 작은아버지 부부와 동거하지 않았던 기간인 2018년 1~4월 빼앗긴 1400여만 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상 ‘동거 친족’으로 인정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내 돈을 뺏어갔는데 왜 제대로 처벌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A 씨의 호소에 이 변호사는 헌재에 친족상도례가 위헌인지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로 했다. 장애인 학대 사건에는 늘 해당 규정으로 인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법조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2020년 3월 이 변호사는 서울에서 활동 중인 김광훈, 송시현, 최현정, 정제형, 김창균, 이정민 등 공익 변호사 10여 명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친족상도례를 규정하는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 4년 3개월 만이다. 헌재는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가 개정할 때까지 이 조항 적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1953년 제정 형법 이래 71년간 유지됐던 친족상도례 조항은 이날 곧바로 적용이 중단됐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은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며 “입법 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나치게 넓은 친족에게 법을 일률 적용하는 점과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등 법의 적용 범위가 넓다는 점 등을 헌법불합치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A 씨는 판결 직후 이 변호사에게 “내 사건은 제대로 해결이 안 됐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 그동안 수고해 준 변호사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 변호사는 “장애인 인권 사건은 항상 친족상도례 조항이 문제가 됐는데 70년이 넘어서야 중단된 것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며 “이제라도 착취당하는 가족 구성원이 조금이나마 피해를 복구할 수 있고 가해자가 처벌받을 길이 열려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