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사건 기록이 식는다" 수사청·기소청 사이 '31km 공백'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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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사회부 기자

검찰청이 사라진다. 1948년 출범 이후 78년 만이다. 검사가 직접 수사해온 72년의 관행도 다음 달 2일로 끝난다. 새로 출범하는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유지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수사를 나눠 맡는다. 그런데 이렇게 큰 역사적 전환 앞에서, 정작 묻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새로 생기는 기관들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떻게 협력하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부산을 보면 그 질문의 무게가 실감난다. 전국 5개 지방중수청 중 유일하게 부산청은 연제구 법조타운과 뚝 떨어진 강서구 명지동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는 약 31km.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인원 대비 필요 면적을 산출해 사용할 층수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수청의 입지가 검사와의 거리가 아니라 확보 가능한 면적을 기준으로 정해진 셈이다. 압수수색영장은 검사의 신청으로만 법관이 발부하도록 헌법 제12조와 16조에 못 박혀 있다. 수사는 중수청이 하지만 영장 청구는 여전히 검사, 즉 공소청의 몫이다. 수사와 기소를 아무리 종이 위에서 갈라놓아도 영장이 필요한 순간엔 결국 검사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만큼은 이번 개혁으로도 손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새 수사기관의 위치를 정할 때 검사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빨리 오갈 수 있는지가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변수였을 것이다. 헌법이 정한 원칙조차 흔들지 못하는 절차를 정작 행정적 판단 하나가 무력화시킨 셈이다. 물론 서류 자체는 전자시스템으로 오갈 수 있지만, 물리적 증거 이송이나 구속영장 협의 등 현장 절차까지 대체할 수 는 없다.

여기에 인력과 공간 문제까지 겹친다. 세무서와 상가가 함께 들어선 민간 건물 9개 층을 빌려 쓰다 보니 압수물 관리와 동선 분리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산지검 내부에선 ‘입지 때문에 중수청 지원이 꺼려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모든 게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던 중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수사와 기소 기관이 서면으로만 소통하게 되는 상황을 ‘사건 기록이 식는다’고 표현했다. 수사는 증거가 뜨거울 때 쏟아져야 하는데, 서류가 기관 사이를 오가는 시간만큼 진술의 신선도도, 수사기관의 의지도 식는다는 것이다. 그가 다뤘던 한 강력사건에서 피해자가 뒤늦게 의식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진술이 나왔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사건 기록이 다시 여러 관문을 거쳐야 했다. 그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책임 소재를 꼽았다. 훗날 무죄가 나거나 국가배상이 문제될 때 “수사가 부실했다”와 “공소유지를 못 했다”는 책임 떠넘기기만 남고, 정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는 사람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설계된 조직표는 완결돼 보인다. 그 표가 지역에 내려오는 순간 거리와 건물, 사람이라는 현실과 부딪힌다는 것을 이 표를 만든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법무부가 지난 4일 발표한 공소청 직제안에 따르면, ‘중대범죄전담부’ 29개 중 5개 부서가 지방중수청 합동수사과와 짝을 지어 영장 신청 단계의 법률 판단과 증거수집 의견을 전담한다. 하지만 부산처럼 입지부터 멀어지면 이러한 전담부서의 존재도 무색해진다.

개청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31km의 거리를 메울 대책은 여전히 부재하다. 조직표를 다듬기보다 현장의 간극을 좁히는 조치가 시급하다. 기록이 식고 책임이 흩어지기 전에 실질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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