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티어] ‘만드는 해운’에서 ‘선도하는 해운’으로
김다원 (주)마리나체인 대표
북극항로 시범 운항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한국시간 8월 31일 오전 8시 북위 66도 30분 이북의 북극해역에 진입했다. 해양수산부 제공
글로벌 해양 환경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전 세계 선사들이 짊어져야 할 운항 비용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당장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 규제에 따라 선박이 부산에서 로테르담으로 이동하는 1항차에 대해, 선사들은 일종의 탄소세 개념으로 약 5억 원에 달하는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왕복 시 무려 10억 원에 이르는, 이 막대한 추가 비용은 상한선이 없으며, 규제가 심화함에 따라 지속해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선박 연료유의 탄소 집약도를 직접 규제하는 FuelEU Maritime 역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고 2050년까지 감축 기준이 가파르게 강화될 예정이다. 이는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음을 뜻하며, 향후 친환경 선박 전환과 고효율 친환경 기자재에 대한 전 세계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거세지는 환경 규제의 파도 속에서, 수에즈운하를 우회하는 기존 항로 대비 운항 거리와 시간을 대폭 단축하여 물류비용과 탄소 배출을 동시에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북극항로’의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과거 러시아 야말(Yamal) 프로젝트가 초대형 쇄빙 LNG 운반선 수요를 창출하며 북극해의 상업적 운항 가능성을 증명했듯, 북극권 물류 수송은 이미 세계적 관심사다.
북극항로가 제도적·기술적으로 정비된다면, 부산은 동북아의 관문 항만을 넘어 아시아의 싱가포르를 뛰어넘는 글로벌 친환경 급유 및 해양 종합 서비스 허브로 도약하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점을 누리게 된다. 우수한 해기사와 선원 공급 체계, 기자재 산업, 인근 대형 조선소까지 완비된 부산의 인프라는 이를 위한 최고의 자산이다.
특히 우리는 세계 해운·조선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판도 변화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 선박의 약 55%가 아시아 선주 소유이고 조선 건조의 90% 이상이 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해운·조선 강국이지만, 실상은 몸으로 만들어내는 2차 산업 중심으로 기대 수익률에 한계가 있다. 핵심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비, 선박금융, 보험, 중개, 국제 규제 제정 등 고차원의 고부가가치 산업은 여전히 유럽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아득히 넘어 AI 전환이 현실화하는 지금, 우리가 축적한 독보적인 선박 건조 및 운항 실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한다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해운 산업에서 데이터 기반의 AI 서비스 생태계야말로 우리가 선점해야 할 거대한 블루오션이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은 부산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사회적 과제인 ‘청년 인구 유출’을 해결할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현재 부산에서는 매년 약 2만 명에 달하는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등으로 떠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확실한 주도권을 쥔 ‘해운’과 ‘조선’이라는 명확한 테마 위에 AI·데이터, 선박금융 등 지식 기반 일자리를 결합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된다. 부산은 쾌적한 주거 여건과 도심 인프라를 완벽히 갖춘 도시이니 고부가가치 일자리만 뒷받침된다면 청년과 전문 인재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비전을 담아낼 도시적 그릇과 지원 체계도 이미 탄탄히 갖추어져 있다. 도심형 워케이션 센터들이 활발히 운영되어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테크노파크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지역 혁신 거점 기관들이 청년들의 창업과 기술 도전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해양수산부의 주요 정책 기능과 산하 공공기관들이 부산에 집적되어 해양 정책의 중심축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부산’과 ‘해운’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깊이 있게 엮어내 자본과 투자가 유입될 때이다. 글로벌 해양 규제의 파도를 발판 삼아 북극항로와 친환경·디지털 해운 생태계를 선점한다면, 부산은 청년들의 활기와 자본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기회의 땅으로 재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