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목욕탕에서 펼쳐지는 잔혹하고 아련한 여성사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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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집단C, 9~12일 다원예술 ‘탕’ 초연
물과 몸으로 복원…장소 특정형 공연
회차당 15명만을 위한 녹천탕의 제의

예술집단C가 2026년 신작 공연으로 선보일 '탕'(TANG)의 이미지컷. 에필로그 장면 활용을 위해 출연진들이 부산 인근 해수욕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이번 공연은 극장이 아닌 실제 폐업한 목욕탕을 무대로 펼쳐진다. 예술집단C 제공 예술집단C가 2026년 신작 공연으로 선보일 '탕'(TANG)의 이미지컷. 에필로그 장면 활용을 위해 출연진들이 부산 인근 해수욕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이번 공연은 극장이 아닌 실제 폐업한 목욕탕을 무대로 펼쳐진다. 예술집단C 제공

극장이 아닌 실제 목욕탕이 공연 무대로 변신한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예술집단C’는 오는 9일부터 12일까지 서구 서대신동의 폐업한 녹천탕(해돋이로335번길 4)에서 시어트리컬 퍼포먼스(Theatrical Performance, 연극 퍼포먼스) ‘탕(TANG)-그녀들을 위한 작은 제의’를 선보인다.

예술집단C의 황지선 대표 겸 연출가는 “‘탕’은 ‘씻어내고 싶었던 시간, 그러나 끝내 지워지지 않은 기억’에서 출발한다”며 “환향녀, 여성독립군, 위안부 여성, 기지촌 여성, 여공,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온 여성들의 시간을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해 몸과 움직임, 물과 소리, 빛과 공간을 통해 다시 불러낸다”고 소개했다.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향녀를 다룬 ‘돌아갈 수 없는 몸’에서는 돌아왔지만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여성의 몸을, ‘기억되지 못한 몸’에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여성독립군의 시간을 표현한다. ‘씻기지 않는 몸’에서는 위안부 여성들의 기억을, ‘지워지는 몸’에서는 기지촌 여성의 삶과 늙어가는 몸을, ‘닳고 앓은 몸’에서는 가족을 위해 꿈을 접고 공장으로 향했던 여공의 시간을 다룬다. 마지막 ‘지울 수 없는 몸’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 여성들의 기억이 겹쳐지며 하나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시대에 남겨진 여성들의 몸과 기억을 느슨하게 연결하며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던 그녀들의 시간은 물처럼 흘러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술집단C가 2026년 신작 공연으로 선보일 '탕'(TANG)의 이미지컷. 예술집단C 제공 예술집단C가 2026년 신작 공연으로 선보일 '탕'(TANG)의 이미지컷. 예술집단C 제공

실제 폐업한 목욕탕을 무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황 대표는 “여성 수난사를 다루며 여성들이 여러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 목욕탕에 이르게 되었다”며 “폐목욕탕은 습도가 높고 라이브 악기 연주, 영상, 조명, 전기 시설 등이 필요한 작업 환경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한 시대의 기억과 여성의 몸에 남겨진 시간을 관객과 마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탕(湯)은 몸을 씻고 하루의 흔적을 흘려보내는 공간이지만 모든 시간이 씻겨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탕’은 씻어내기 위한 물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한 물을 이야기하는 공연”이라고 덧붙였다.

공연 제목 ‘탕’은 목욕탕의 ‘탕’을 의미함과 동시에, 삶을 끊어내는 총소리 ‘탕, 탕, 탕’을 은유한 것이기도 하다. 무대에는 5명의 캐릭터와 1명의 무용수가 퍼포머로 참여한다.

예술집단C가 2026년 신작 공연으로 선보일 '탕'(TANG)의 이미지컷. 이번 공연은 극장이 아닌 실제 폐업한 목욕탕을 무대로 펼쳐진다. 예술집단C 제공 예술집단C가 2026년 신작 공연으로 선보일 '탕'(TANG)의 이미지컷. 이번 공연은 극장이 아닌 실제 폐업한 목욕탕을 무대로 펼쳐진다. 예술집단C 제공

장소 특정적 공연을 주로 선보여 온 예술집단C의 작업 방식도 눈길을 끈다. 황 대표는 “공간, 이미지, 움직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신체를 적극 활용한다. 춤도 판토마임도 아닌 새로운 퍼포밍 형태”라며 “대본에는 시놉시스와 이미지 설명이 담겨 있으며, 세부 동작은 배우들이 느끼는 바를 워크숍을 통해 직접 만들어간다”고 전했다. 신체와 공간, 소리와 물이 결합되는 과정을 위해 이번 작품의 준비 기간만 3개월이 걸렸다.

공연 중에는 실제 탕 안에 물을 채우고 퍼포머들이 그 안팎을 오가며 연기를 펼친다. 관객은 목욕탕 입구 좌우 측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아 무대를 입체적으로 관람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황지선이 작·연출을 맡았으며 이혜영, 이은주, 김소이(움직임/춤), 김여진, 김아름, 이윤하가 출연한다.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5시다. 러닝타임은 75분으로, 공간 특성상 회차당 15명만 입장할 수 있어 사전 예약이 필수다. 입장료는 3만 원이며, 문의는 전화(010-6324-4339)로 가능하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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