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달린 지방은 ‘발버둥’ 정부와 국회는 ‘요지부동’ [다시, 지방분권]
[다시, 지방분권] ⑤ 중앙 논리에 발목 잡힌 분권
2023년 법인세 78%가 수도권
제2도시 부산에 100대 기업 ‘0’
‘지역 정책은 특혜’ 색안경 여전
“실질 권한 이양·파격 지원 필요”
지난해 9월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5년도 부산시 수도권 기업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제2의 도시’ 부산도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 ‘지방 소멸’로 향하는 시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지역에선 절박한 현실을 타개하려 발버둥 치지만, 중앙 정부와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된 국회는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인다.
생존을 위한 과감한 지방 분권 대책은 입법이나 제도 개선 단계에서 번번이 제동에 걸린다. 중앙 정치권은 필요성에 대한 원론적 공감만 표시할 뿐이다. 정작 지역에서 실질적 재정·세제 분권을 요구하면 ‘재정 안정성’과 ‘형평성’ 등의 논리로 발목을 잡곤 한다.
오랜 경고음에도 부산·울산·경남 등 비수도권 소멸 위기는 방치됐다. 18일 경남도의회에 따르면 2023년 전체 법인세 중 78.1%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그해 경남에서만 수도권으로 근로자 3만 6948명이 유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에도 경남 청년 인구 순유출은 8074명에 달했다. 사람은 떠나고, 세금은 줄고, 기업은 오지 않는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법인세 차등 적용’ 등 특단의 대책들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기업에 낮은 세율을 적용해 지방 이전을 유도하면 일자리와 세금을 늘리는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현 지방시대위원회)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법인세율 지역별 차등 적용 방안’ 연구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별로 법인세 간격을 10%씩 두면 신규 투자가 최대 9조 7333억 원 늘어난다고 분석됐다. 비수도권 인하와 수도권 소폭 인상에 나서면 오히려 세수가 연간 1조 1460억 원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현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조세소위 회의에서 윤영석 의원(양산갑)은 “제2의 도시 부산에 100대 기업이 하나도 없다”고 진단하며 “많은 나라가 법인세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법인세 세액 감면 혜택은 오히려 지방보다 수도권에 집중된 게 현실이다. 윤 의원이 국세청으로 제출받은 ‘2019~2024년 법인 대상 상위 5개 항목 조세감면 현황’에 따르면 전체 법인세 감면 규모 중 68%가 서울·인천·경기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중앙 정부와 수도권 의원들은 지역 정책을 ‘특혜’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인천국제공항을 지닌 수도권이 가덕신공항 건설을 반대했듯, 법인세 차등 적용 방안을 ‘재정 부담’으로 여긴다. 지역 생존을 위한 법안도 국회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형평성과 세수 감소 등을 근거로 대지만, 정작 해외 사례를 보면 지역을 위한 정책은 다각적이다. 연방 국가인 스위스는 법인세 범위를 26개 주 별로 10~20%대로 차등 적용했고, 이스라엘은 지역별로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에 각종 인센티브(현금보조, 면세, 융자 보증 등)를 주거나 법인세 비율을 다르게 부과하기도 했다. “국세는 동일 세율”이란 정부 원칙은 여러 나라에서 예외가 된 지 오래다.
정부와 국회에서 획기적 인식 변화 없이는 지역 소멸을 막을 법안과 제도는 실현되기 어렵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과반일 정도로 일극주의가 심해지는 현실에선 지역은 더 홀대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2대 총선만 해도 수도권 지역구 의석은 122석으로 전체 지역구 254석의 48%에 이른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42.7%였던 점을 고려하면 의석 비율은 증가한 셈이다. 지방 소멸이 진행될수록 수도권 의원들 입김이 세질 수 있는 구조다.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지역을 위한 정책에 ‘수단의 적절성’이나 ‘부의 세습’ 등을 근거로 제동을 거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이재명 정부가 기회발전특구, 소득·소비 중심 지방세 확대, 지방교부세율 인상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과감한 지방 분권과 속도감 있는 균형 발전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방에 실질적 권한을 이양하면서 파격적 지원과 인프라 확대가 있어야 수도권 집중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재율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는 “가덕신공항 같은 핵심적인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국제도시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변화 기조 속에서 법인세 감면이나 가업상속공제 관련 제도 등도 병행하면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