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지도 밖으로
서정아 소설가
지도 밖으로 걸어 나갔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낯설고 기묘한 세계
일상이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되는 순간
타고난 길치이지만 스마트폰 길찾기 앱을 이용하면서부터는 길을 잃을 일이 거의 없다. 종이 지도와는 달리 실시간 나의 위치와 최단 경로까지 알려주니 스마트폰 화면상의 화살표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에는 “저기요, 혹시…”하고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도(道)에 대해 묻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경계하거나 도망치듯 가버리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목적지를 바로 근처에 두고도 한참을 헤맨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헤맨다는 건 그 나름대로의 좋은 점도 있다. 낯선 길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주변을 관찰하다보면 평범한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비범한 장면들을 종종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시간 감각이 혼란스러워질 만큼 기묘한 분위기를 지닌 예스러운 건물이라든지, 시멘트 틈 사이로 솟아난 작은 꽃 한 송이라든지, 벽에 해놓은 낙서나 경고문들의 개성어린 문체라든지.
목적지까지 최단 경로의 길을 알려주는 앱,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 유튜브와 SNS의 알고리즘들. 요즘은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필요한 사항과 내 관심사를 알아서 파악하고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인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세상이지만, 때때로 나는 그 탈선의 여지없는 세계가 마냥 지루하다. 유튜브도 릴스도, 사용 초반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때가 있었는데, 내 관심사에 따라 알고리즘이 생성되고 늘 비슷비슷한 영상들만 피드에 올라오니 어느 순간 질려버렸다. 그러니 간혹 화면을 열었다가도 결국 어느 것도 클릭하지 않은 채 스크롤만 무의미하게 내리다가 꺼버리곤 한다. 스마트폰 덕분에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것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지만, 실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경로에 따라 점점 더 비슷한 것만 보게 되고 취향도 시각도 편향될 가능성이 커져버린 것이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우리를 익숙한 생각과 익숙한 세계 안에 머물게 한다.
익숙함 속에 머문다는 것은 편안하고 안전한 일이지만, 나는 때때로 그 알고리즘을 깨고 정해진 경로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지도 밖으로,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이라는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어느 소도시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갑작스런 폭설을 맞이하고, 찾아가는 숙소마다 만실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낙담한 그녀는 길을 걷다 만난 동네 주민에게 지도를 내밀며 어디로 가면 숙박할 곳이 있을지 묻는다. 동네 주민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서 그녀가 내민 지도의 바깥쪽으로 손가락을 쭉 이동하며 대답한다. 이 지도에 보이지 않는 저쪽 산으로 올라가면 작은 여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아마 방이 있을 거라고. 그 말대로 지도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녀는 묘한 분위기의 작은 산장에 묵게 되며 현실과 꿈의 경계와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지도에 표기된 장소들, 혹은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방향만을 따라 가면 세계는 늘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행과 나날〉의 주인공처럼 지도 밖으로 걸어 나갔을 때, 혹은 지도에 그려져 있는 않는 것들을 탐색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낯설고 기묘한 세계가 있다. 일상이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반드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존 듀이가 말한 것처럼 예술은 특별한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풍경도 시선을 멈추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려보는 일이다. 피드에 뜬 영상이 아니라 직접 고른 영화를 보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활자에 시선을 멈춰보는 일, 그리고 길을 잃더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낯선 풍경들을 설레며 마주하는 일.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