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나서다 역풍” 정부, 3500억 달러 투자 예정대로 [미 상호관세 위법]
재협상 요구하다 美 보복 우려
대미 투자 일정 계획대로 추진
22일 오후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부과한 이른바 '상호관세'가 20일(현지시간) 미 연방 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무효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뒤 백악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미 동부시간 24일 0시 1분부터 해당 관세가 발효하도록 하는 포고문을 냈다. 연합뉴스
미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했지만, 우리 정부가 상호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약속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일단 계획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방식으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고, 자동차와 철강에 부과되는 품목 관세는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도 있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미 투자 일정을 차질 없이 밟아간다는 계획이다.
22일 통상 당국 관계자는 “미 대법원 판결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대법 판결에도 한미 간 관세 합의 이행과 관련한 우호적 협의는 멈추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이 관심을 보이는 발전, 에너지, 핵심 광물 등에서 구체적 투자 분야와 일정 등을 조율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직전 박정성 산업통상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실무단이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미 상무부 관계자를 만나 대미 투자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대미 투자를 위한 기금과 기구 마련을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을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데, 정부는 입법 일정을 기존 계획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특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특위는 정부 간에 투자를 약속한 부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어서 이번 판결과 직접적 관계는 없다”며 “미국과의 합의가 살아 있는 상황에선 특별법은 예정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특위는 애초 일정대로 24일 입법공청회를 열고 유관 부처와 산업계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위 활동 기한은 3월 9일까지로, 여야는 3월 5일 본회의를 열어 특별법을 처리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는 대미 투자 후보 프로젝트 검토를 위한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이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어떤 분야에 투자할지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총 36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를 확정한 데 이어 2호 프로젝트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사업성 높은 현지 투자 프로젝트를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후보 검토에 착수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관세 합의에 따라 최초 25%로 책정됐던 상호관세가 작년 11월부터 15%로 인하됐다. 그런데 올해 1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지연시킨다며 자동차 관세와 함께 상호관세를 25%로 재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 대법원 판결로 상호관세 25% 부과는 어렵게 됐지만 품목별 관세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대미 투자 계획을 수정하거나 관세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도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로 한미 통상 협상 결과와 합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 사안일 것”이라면서 “지금 우리가 주도적으로 뭔가 하려다가는 상당한 부작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은 “자동차와 철강은 상호관세가 아닌 품목 관세 적용을 받아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도체도 품목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며 “이것만으로도 미국은 한국에 충분한 지렛대로 쓸 수 있어 당장 투자 협정을 변경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