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헌법 정신을 생각하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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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편집부장

美 대법원, 트럼프 '상호 관세' 제동
관세, 대통령 권한 밖의 일로 규정
트럼프 "미국에 대한 수치" 반발

서울중앙지법, '12·3 계엄=폭동' 판단
장동혁 "판결문 곳곳 허점 가득" 조롱

헌법, 국가 권력의 사용 설명서
정치적 유혹 클수록 더 지켜져야

지난 주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이 일단 멈춰 섰다. 지난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나라에 부과한 상호 관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어져 온 ‘관세 전쟁’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은 트럼프의 결정이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고 봤다. 관세는 곧 세금이며,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 1조는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권한은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은 헌법상 고유한 과세권을 갖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동시에 트럼프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세금을 걷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트럼프가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라는 구호와 함께 미국 경제 발전을 위한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결정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국의 사법부 최고기관을 즉각 공격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대한 수치”라고 대법원의 결정을 비난하며 대법원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무역법을 동원해 상호 관세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트럼프에게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미국의 사법부와 헌법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헌법이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은 한국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9일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인정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이 벌인 비상계엄은 “국헌 문란의 목적이 인정되는 폭동”이라고 판단했다. 비상계엄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다고도 판시했다.

이에 대한 한국 제1 야당 대표의 발언에서 ‘헌법 존중’은 없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아직 1심 판결일 뿐이다”며 선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판결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허점들은 지귀연 판사가 남겨놓은 마지막 양심의 흔적”이라며 사법부의 판단을 비꼬았다. 대한민국 사법부 판사로, 오랜 기간 헌법에 근거해 자신의 경력을 쌓고, 삶을 이어온 그에게서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하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사법부의 12·3 계엄에 대한 첫 판결은 어떠한 정치적 목적과 명분을 앞세우더라도, 국가의 존립과 국가기관의 권능을 흔드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판결이다. 처벌의 수위에 대한 개인별, 정치 집단별 의견 차이는 있다. 미국 사법부가 내린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판결 역시 행정부의 긴급권한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며 헌법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을 국가 권력의 ‘사용 설명서’이자 ‘사슬’로 비유한다. 헌법은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대한민국 입법·행정·사법의 권력자들이 그들의 선서에서 각각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라고 비슷한 내용의 선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한 헌법학자는 ‘헌법은 최악의 세상을 막는 숭고한 힘이자, 최선의 삶을 향한 절대적 상식’이라고 정의한다. 헌법은 언제나 존중 받아야 하며, 헌법은 하늘에 둥둥 다니는 조문이 아닌 국민의 생활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는 헌법 질서를 위기에 몰아넣는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헌법이 무너지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시민들을 거리로 나섰고, 법원은 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때론 법원이 무너질 때는 국회가 법원을 견제했다. 행정이 입법부의 권한을 잠식할 때는 사법부가 나서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헌법이 설계해 놓은 ‘구조적 엄벌’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 관세 부과에 제동을 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제적 파장이 아무리 크더라도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권한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한다. 헌법을 뒤흔드는 행위는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세운 나라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일인 것이다. 헌법은 정치적 유혹이 클수록, 경제적 이해관계가 클수록 더욱 단단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법부와 미국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

hangang@busan.com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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