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빛과 그림자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호황 지속
코스피 사상 최고치 도달에도 한 몫
반도체 의존도 30% 넘으며 경고음도
타 업종 불황 여전… 내리막길도 대비
“이번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초강세장)은 예상보다 길어질 것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 세계 시장에서 반도체 호황이 지속되자 “언제까지 갈 것이냐”는 물음에 국내외 증시 전문가들은 이같이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 주부, 학생할 것 없이 온나라에 주식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불과 2024년 11월에만 해도 4만 6000원이었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은 15만~16만 원대를 맴돌고 있고, SK하이닉스도 1년 전 20만 원대에서 이제 90만 원 전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 호황이 시작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상 최대 실적과 코스피 주가지수 사상 최고치가 이어졌다. 코스피는 지난해 6월 종가 기준으로 4년 만에 다시 3000 고지를 밟았고, 지난해 12월 4000 고지를 넘어 올들어 1월엔 5000 고지도 순식간에 돌파했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증시가 그야말로 ‘불장’이 됐다.
코스피 지수만 놓고 보면 우리 경제가 엄청난 호황을 맞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철강, 화학, 가전 등의 제조업은 정체 내지 불황을 겪고 있고 서비스업도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수년째 경기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우리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 산업의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다.
그동안 주요 산업의 ‘슈퍼사이클’은 1~2년새 ‘슈퍼 몰락’으로 이어졌다.
2021년 전기차 바람 속에 글로벌 수요가 늘어나면서 2차전지(배터리) 주들이 폭등했다. 모 기업은 “향후 감당해야 할 수주액만 1000조 원이 넘는다”고 자랑했지만 2023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으로 곧바로 추락했다. 전기차 수요가 회복되고 있지만 2차전지 주식들은 아직도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2008년 조선업과 2011년 태양광, 2021년 석유화학도 호황을 맞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수익 급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조선업과 태양광은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듯하지만 석유화학은 아직도 수렁에 빠져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5~7년에 한 번씩 찾아왔고 한 번 호황이 시작되면 통상 2년 정도 이어졌다. PC 수요가 급증한 1990년대 중반,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활발해져 서버 투자가 집중된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된 2010년대 초반, 인공지능(AI) 연구가 본격화된 2017년이 그랬다. 하지만 2021년엔 상반기 반짝에 그쳤다.
이번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AI 수요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늘어나면서 발생했다. 메모리 제조사들은 범용 D램의 생산을 줄였다. 하지만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인프라 확장, AI 서버 수요 확대 등으로 D램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있었던 삼성전자가 뜻밖의 호황을 맞은 것이다. SK하이닉스도 HBM 수요 확대로 수익이 급등했다.
이들 두 기업의 경쟁 업체들이 D램 제조업체들을 인수하거나 설비를 다시 정비하는 모습이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내년에나 공급 확대가 이뤄질 수 있다며 길게는 2028년까지 슈퍼사이클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호황에 따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 증설이 수도권 위주로 이뤄지고 있고, 반도체 부품업체들도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지방 입장에선 반도체 호황이 강건너 불구경 수준이다. 최근 전라북도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건설중인 경기도 용인 반도체단지를 유치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된 것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지방은 인구감소와 자영업 몰락 등으로 경기침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코스피 5000 달성’을 대선공약에 따라 증시부양책을 편 결과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2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가 추세적 오름세를 이어가면서 23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재의 경기를 반영하는 동행지수는 3개월째 하락세다. 설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전통시장 경기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반도체 외 제조 분야의 경기 부양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얘기가 없다.
슈퍼사이클이 끝나면 증시와 경기는 다시 내리막길을 갈 것이다. 등산할 때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 코스피 5000에 취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내리막길을 대비하자.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