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로봇에 항복한 군인들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피지컬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직접 결정하며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자율주행차량이나 로봇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6도 피지컬 AI를 화두로 내걸었다. CES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공개하는 등 다양한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을 선보이며 로봇 산업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전투용 로봇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피지컬 AI 기반의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군사 훈련에 자율주행 방식으로 정찰·폭파·공격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늑대 로봇을 투입했다. 우리 육군도 지난해 말 경기 연천군에 다족 보행 로봇을 배치해 장병들과 함께 철책 경계 근무를 수행토록 했다. 이 로봇은 미세한 움직임을 인간보다 먼저 감지해 알려준다. 미래형 전투체계 ‘아미타이거’의 일환으로 도입된 이 로봇의 등장은 우리 군의 시스템도 로봇 협업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4년째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AI 기술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AI를 탑재한 무인 무기들이 전쟁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전쟁 초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기 체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우크라이나 방산기업 데브드로이드가 자사의 전투 로봇이 러시아군 3명을 생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 등장하는 무인지상로봇(TW-7.62 모델)은 AI 기반의 자율 탐지 기능을 통해 경로를 자동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정찰과 공격 임무를 수행한다. 작전 반경이 최대 24km에 달하는 이 로봇은 내장된 탄도 계산기를 통해 기관총 명중률을 극대화한다.
영상 속 러시아 병사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 팔을 들고 바닥에 엎드리며 전투 로봇에 항복했다. 외신들은 전투 로봇이 인간 군인을 생포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포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현대전의 중요한 이정표라는 논평도 이어졌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인간이 로봇에 투항까지 하는 상징적인 사태가 발생하면서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언젠가 인류가 AI에게 항복하는 날도 오지 않겠느냐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무분별한 AI 개발 경쟁은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AI 통제권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 확산이 절실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