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오늘 별이 뜨는 이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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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1965~)

늙은 할머니 앞에서 느리게 걷고 있는 늙은 개

할머니가 멈추고

줄의 곡선이 펴지기도 전에

늙은 개는 멈춰선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

흘러가는 시간을 흘러가게 그냥 두는 것

애초에 거기 있었던 마음처럼

할머니가 걸음을 떼자

늙은 개는 동시에 걷기 시작한다

둘은 그렇게 끝까지 곡선이다

왼발은 왼발

오른발은 오른발

구름을 밟고

물 위를 걷듯

나는 조용히 구령을 붙여본다

오늘은 참 많은 별이 뜨겠구나

-시집 〈작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2024) 중에서

시를 쓰면 자신의 베란다에서 키우는 꽃들에게 제일 먼저 읽어준다는 시인. 언젠가 자신의 부음을 생전에 좋아하던 채송화가 제일 먼저 받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시인. 문상객으로 기르던 식물들이 와준다면 행복하겠다는 시인에게 오늘 별이 뜨는 이유가 저렇듯 선명합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흘러가게 그냥 두는 할머니와 늙은 개의 동행. 구름 밟듯 물 위를 걷듯 쉬엄쉬엄 지나가는 모습으로 걷는다는 것.

오늘 나의 별들은 어떤 이유로 반짝일까 생각해봅니다. 바쁘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사느라 사람들과의 거리를 미쳐 헤아리지 못했던 실수, 팽팽하게 잡아당긴 관계들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처진 영혼이 따라올 수 있게 가만히 기다려주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합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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