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나의 선택
신호철 소설가
양자컴퓨터, 가능성 품은 중첩상태
인간의 결정 과정 비슷하게 느껴져
불확실 끌어안는 태도. 탁월한 선택
요즘 뉴스나 인터넷을 보다 보면 ‘양자컴퓨터’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래를 완전히 바꿀 차세대 컴퓨터” “상상할 수 없는 계산 능력”. 그런데 대체 양자컴퓨터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기에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 걸까.
그런 궁금함에 양자컴퓨터에 관해 살펴봤지만, 솔직히 너무 어렵다. 그저 기본 원리 이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0 아니면 1, 둘 중 하나로만 정보를 표현한다. 즉, 전기가 통하는 상태와 끊긴 상태. 이 0과 1을 조합해서 만든 신호 단위를 ‘비트’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에 하나의 상태만 가질 수 있었다.
반면에 양자컴퓨터에서는 0이면서 동시에 1인, 애매한 상태를 품고 있다고 한다. 공중에 던져진 동전이 앞면도 뒷면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가능성만 품고 있는 것을 중첩상태라고 하고, 이 가능성 묶음을 ‘큐비트’라는 단위로 표시한다.
한데 이 중첩상태라는 것이 참 희한하다. 네 개의 열쇠가 달린 꾸러미를 가지고 금고를 연다고 가정해보자. 지금까지의 컴퓨터에선 열쇠를 하나씩 차례로 꽂아 넣어 정답을 찾는 것과 같았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중첩상태를 이용해 네 개의 열쇠를 한꺼번에 쥐고 문 앞에 서는 것과 비슷하다. 즉, ‘어느 열쇠가 맞는지 판별해 주는 규칙’을 통째로 이 열쇠꾸러미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파동이 겹칠 때 어떤 부분은 서로 상쇄되고, 어떤 부분은 증폭되는 것처럼, 조건에 맞지 않는 열쇠는 상쇄되고 조건에 맞는 열쇠만 또렷해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 큐비트를 ‘측정’하는 바로 그 순간, 가능성 중 하나가 현실로 결정되어 열쇠 하나가 짠! 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이론상 그렇게 된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으론 이 ‘중첩상태’라는 것의 특별한 쓸모를 발견한 과학자의 지혜 또한 감탄스럽다. 우리 인간에게 볼 수 있는 중첩상태는 대부분 좀스럽거나 대범하지 못한 모습인데 말이다. 멀리 살펴볼 것도 없이 바로 내가 그렇다.
몇 주 전에 나는 러닝머신을 한 대 사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3개의 후보를 골라놓고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집이 그리 넓지 않다. 짧고 작은 발판의 모델을 선택해야 하나? 층간소음도 걱정이다. 아무리 쿠션을 놓는다 해도 진동이 아래층으로 전해질 것 같다. 차라리 그 돈으로 헬스장에 등록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한데, 우리 동네 헬스장이 너무 멀다.
나는 완벽한 중첩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중첩상태에 머무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세 개의 후보 중의 하나를 고르든지, 아니면 ‘에러’가 되어 구매계획을 취소할 수도 있다.
사람의 중첩상태는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쓸모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한데, 그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찾아낸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돌연한 결심, 나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의 전향, 마음이 갑자기 기울어지는 순간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미 인간의 머릿속에 작은 양자컴퓨터가 심겨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가 망설이고, 주저하고, 여러 가능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결함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무한히 많은 미래를 품고 있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기능일지도 모른다. 0과 1로 나뉘지 않는 이 현실에서, 불확실을 끌어안는 태도야말로 미래를 모르는 우리의 가장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그리고 그 끝에 드러난 하나의 결정을 우리는 ‘나의 선택’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