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롯데·LG가 부산에 올까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독일·일본 소도시에 대기업 본사 수두룩
한국은 수도권에 대기업 본사 80% 집중
이재명, "균형 발전이 국가 생존 전략"
해수부·해운기업 부산 이전… 롯데도 올까
몇 년 전 독일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 본사를 방문했는데, 번듯한 대도시가 아니라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글로벌 2위 자동차 기업의 본거지라고 하기엔 초라했지만 형식보다 실리를 따지는 독일다운 모습이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가 좁다며 강남구 삼성동 노른자위에 땅값만 10조 원에 사들인 것과 비교된다.
독일의 경우 인구 142만 명으로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에는 세계적인 지멘스, BMW, 알리안츠 본사가 있다.
이웃 일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글로벌 자동차 1위 기업 토요타자동차 본사는 일본의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아이치현 토요타시에 있다. 두 나라 대기업의 본사 위치를 해당 국가의 지도에 표시한 걸 보면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있다. 대기업 본사가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한국과 정반대 그림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은 총 385곳으로, 전체의 77%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정규직 채용도 수도권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최근 올해 3분기 정규직 채용 공고를 17개 광역시도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경기도 26.5%, 서울 21.0%였다. 두 지역만 합쳐도 47.5%였다.
문제는 이 같은 대기업과 일자리 쏠림으로 인해 지방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게 되면 향후 지방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도 줄어들게 되고, 결국 성장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자립도에서도 수도권과 지방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 ‘지방재정 365’에 공개된 2025년 기준 지자체별 재정자립도를 보면 50%를 넘어서는 곳은 서울시와 경기도, 세종뿐이다. 20%대도 4곳이나 됐다. 부산은 42.7%다. 이처럼 수도권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은 대기업들의 법인세, 재산세 영향이 크다.
본사의 지방 이전을 꺼리는 대기업들의 항변은 이렇다. “지방으로 본사를 옮기면 인재 채용이 안되고 결국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수도권도 계속되는 과밀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그로 인한 교통체증 등이 문제다. 돈과 사람이 몰린다고 좋다고만 할 일은 아닌 상황이다. 지방과 수도권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가진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어차피 땅은 제한돼 있고 사람은 계속 몰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도권 집중 문제를 ‘국가적 위험요인’으로 규정하고 “균형발전을 더 이상 지역 배려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 이후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16일 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앞으로 중앙환경정책위원회 등 정부위원회에 지방 관계자의 참여가 대폭 확대된다. 지역 특성과 현장의 정책 수요를 주요 국가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또한 지방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과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법)’도 이날 통과됐다.
공공기관 2차 이전계획도 내년에 발표된다. 이전은 2027년부터 시작된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15개 국가첨단산단 등 성장거점을 조성하고 도로·철도·공항 등 지방 교통인프라를 대폭 확충한다고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처음으로 국가균형발전을 국가운영의 기본축으로 제시하고, 행정수도 세종 이전, 지방 혁신도시로의 공기업 이전, 기업도시 등을 추진했지만 지방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대기업 이전을 시도했지만 기업들이 반발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대학이 함께 움직여야 효과가 난다. 또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해 기업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역인재를 키우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8일부터 해양수산부가 정부세종청사를 떠나 부산으로 이전을 진행하고 있다.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도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기로 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지만 매출 10대 기업은커녕 100대 기업도 아직 본사가 없다. 지역 연고 기업 롯데나 LG의 주요 계열사 한 곳이라도 부산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