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혐오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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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늦가을 단풍을 볼 겸 금정산에 올랐다. 제2망루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일흔은 넘어 보이는 신사분이 다가와 갑자기 퀴즈를 내겠다고 하였다. 얼떨결에 받아 든 퀴즈는 두 개였다. 하나는 금정산성의 축조 연대를 맞추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독립문이 어느 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퀴즈의 목적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두 문제를 근사하게나마 바로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퀴즈를 내지 않고 젊은 커플이 앉아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관계가 없으며, 구한말 우리나라가 독립문을 세웠던 것은 중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흐르던 혐오

다시 한국에서 중국으로 흘러가

수평적 경쟁관계 외면 어리석음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퀴즈를 내고 설명을 하는 태도에서 퀴즈에 무엇을 담고 싶었는가 하는 의도가 깊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독립문 건립은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말로 시작한 설명은 한반도와 필리핀을 놓고 일본과 미국이 구두로 양해하였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었다는 어떤 근거도 없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퀴즈와는 관계가 없는 말을 하던 그가 황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에서 의도는 더욱 짙게 확인되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혐오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일제의 만행을 많이 듣고 자랐을 고령의 신사분으로부터 일본에는 우호적이고 중국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접하는 것은 좀 의외였다. 물론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또 동북아 3국 간의 혐오는, 정도와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3국 모두 적지 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국 간 혐오의 역사에서 단연 선두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혐오 즉 혐한(嫌韓)이었다. 대체로 혐오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경향이 짙은 것이어서 좀 더 발달된 나라들이 뒤처진 나라에 보내는 무시가 핵심을 이룬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한국에 대한 일본의 혐오는 그래서 역사적 뿌리가 깊고 강력하였다.

일본에서 혐한은 한 때 산업으로 불릴 만큼 성행하였다. 혐한 서적들은 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아주 최근에 들어와서야 많이 퇴색되었다. 진실과는 상관 없이 한국은 나쁘고 곧 무너질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선동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을 만큼 한국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전의 마무리는 1인당 소득에서 일본이 한국에 뒤지게 된 것이었고, 이로써 혐한이 설 수 있는 핵심 토대는 무너져 내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혐오는 사실을 부정하고 보고 싶은 것만 봄으로써 적절한 대응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혐오를 통해 일시적으로는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일본이 대응책을 준비하는 데는 그 같은 혐오가 일절 기여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대중 혐오도 근본에서는 다를 바 없다. 중국의 발전이 우리보다 낮고, 중국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부분적인 사실을 부풀려 전체적인 것처럼 오해하게 하는 것도 닮았다. 게다가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자극적인 전달 방식으로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새로운 상업적 방식이 결합되면서 더욱 빈번하게 콘텐츠들이 생산되고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공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중국에서 생산된 원재료 없이는 세계의 공장들이 가동되지 못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부문에서는 미국과 선두를 놓고 다투는 유일한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한 때 우리나라가 앞서가던 많은 분야에서 중국이 격차를 줄이고 일부는 앞서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오늘날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경제는 이제까지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매우 수평적 경쟁 관계에 있다. 일본과 중국이 외교적인 문제로 서로의 약점을 노린 경제적 제재를 한 방씩 주고 받고 있지만, 어느 쪽도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는 것은 경제가 너무 깊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으로 3국 간에 형성된 경쟁 관계가 그만큼 심각하고 또 그러한 경쟁 때문에 불필요한 혐오와 증오가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3국이 함께 이러한 혐오를 줄여나가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미워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혐오가 아닌 사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좀 더 냉철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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