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만의 이야기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관건” [브랜딩, 지역을 살리다]
⑤ ‘로컬 브랜드’ 어떻게 만들까
12세기 일본 패잔병 모인 마을
건축·문화 보존해 세계유산 지정
독창적인 소재라면 가치 더 높아
인재 양성·지역사회 연계도 필요
눈 덮인 일본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 전경. 패잔병이 만든 마을이라는 역사와 12세기 건축 양식을 유지·활용하고 있어 세계적인 문화 도시이자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김현우 기자 khw82@
“지역이 살기 위해선 로컬 브랜드가 필요합니다. 수도권 모방이 아니라 특성화가 중요합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많은 지자체들이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브랜드 발굴·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을 다양하게 만들고 젊게 만들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로컬 브랜드로 인해 낙후 상권이 되살아나며 젊은 인구가 유입되고 수도권 집중이 완화되는 등 국토 발전의 균형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로컬 브랜드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컬 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선 먼저 독창적이고 지역 정체성을 담은 소재와 이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선행돼야 한다.
경상국립대학교 스마트유통물류학과 윤창술 교수는 “모방만 해서는 결코 대도시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가치가 필요하다. 지역이 가진 역사나 콘텐츠는 다른 도시가 모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컬 콘텐츠를 지자체나 지역 문화 단체가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 민간에서 독창적으로 활용하고 확산한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콘텐츠가 로컬 브랜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 중소 도시에는 로컬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와 소재가 풍부하다. 하지만 제대로 발굴·해석되거나 의미 부여가 이뤄지는 건 극소수다. 특히 암울했던 지역사, 천한 신분 등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주민 반발 등에 가로막혀 콘텐츠로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기후현의 시라카와고 마을은 12세기 헤이안 시대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들이 들어와 만든 조그만 마을이다. 당시엔 외부 추격을 피하기 위한 고립된 산간 마을이었을 뿐이지만 그 후손들은 마을의 역사를 로컬 브랜드로 확장했다. 특히 당시의 ‘갓쇼즈쿠리’ 건축 양식이나 생활 문화를 그대로 보존·활용함으로써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유네스코 역시 시라카와고의 지역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했다. 소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활용 하는 지에 따라 브랜드 가치도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일본 오사카 세이케이대학교 경영학과 이미화 교수는 “역사가 없는 지역이 없고 그 지역만의 정체성은 어디나 갖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그걸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면서 “그런 역사가 혹여 부끄러운 과거사 일지라도 어디에도 없는 소재라면 오히려 그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지역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품, 예를 들면 요즘 케이블카가 사람들에게 인기라고 지자체마다 케이블카 사업을 펼치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독창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는 지역에서 그것을 어떻게 의미 부여하느냐에 따라 차별화된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독창적인 소재가 있더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관심 있는 사람이 소재를 활용하면 이와 관련해 소수의 팬덤이 형성되고 서서히 경쟁력을 갖춰가는 형태를 보이는 게 로컬 브랜드·로컬 크리에이터다.
주체나 소재가 대중적이지 않은 탓에 일반적인 비즈니스 성공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관련 인재 양성도 다른 분야와 달리 상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단순 교육으로는 양성이 어렵고 예산만 지원해서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또한 지자체가 지원하면서 통제하려 한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로컬 브랜드를 형성하고 활용하기 위한 인재 양성과 지역사회 연계·협력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혁신실 심병철 책임연구원은 “시장에 먼저 기회를 줘야 한다. 분위기나 조건, 환경을 만드는 건 공공의 역할이 맞다. 다만 그들이 뭉치고 공유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상권을 만드는 건 직접적인 관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가까이 교육도 하고 지원금도 줬고 프로젝트도 함께 해 봤다.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관심사가 비슷한 인재들을 만나게 해주고 옆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온 뒤 홍보하고 확장할 때 성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양질의 콘텐츠 제작 능력이나 기술력·트렌드에 맞는 시장성·글로벌 확산력 등도 갖춰야 한다.
대만 타이중 중흥대 호챠싱 역사학과 교수는 “가장 지역적인 소재가 가장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미 세계 각국이 지역적인 소재를 발굴하고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좋은 기회에 놓여 있다.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로컬 브랜드를 만든다면 중소 도시가 활성화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