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상점이 객실로… 마을 전체의 ‘호텔화’, 숙박도 20배 껑충 [브랜딩, 지역을 살리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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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일본 오사카부 후세 ‘세카이 호텔’

저출생·고령화로 상점가 절반이 폐점
한 부동산 회사, 방치된 건물 10채 매입
객실 30곳 만들어 ‘현지체험+숙박’
협약 맺은 동네 사우나·식당 등 이용
“한국서도 일상+관광 힌트 응용해야”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후세역 인근에 있는 ‘세카이 호텔’은 주변 카페와 협약을 맺고 투숙객에게 무료로 조식을 제공한다. 강대한 기자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후세역 인근에 있는 ‘세카이 호텔’은 주변 카페와 협약을 맺고 투숙객에게 무료로 조식을 제공한다. 강대한 기자

“자연스레 녹아들어 현지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입동을 앞두고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던 지난달 5일 오후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후세역 앞. 바쁘게 이동하는 현지인들 사이 큼지막한 캐리어를 끌고 발걸음을 옮기는 관광객이 드문드문 보였다.

대부분이 역 앞에 자리 잡은 한 상점가를 들락날락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을 따라 다다른 곳은 상점가 내부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나지막한 건물의 ‘세카이 호텔’이다.

이 호텔은 급변하는 사회·산업 구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연 도태돼 가던 동네 상권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주는 역할을 했다. 후세 지역 상점가 일대를 호텔 일부 시설로 리노베이션하면서다. 70~80년 전 모습을 간직한 동네에서 ‘현지 체험+숙박’이라는 매력적인 테마는 국내외 관광객을 후세로 불러들였다. 갈수록 늘어나는 외지인은 사실상 생기를 잃었던 후세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발 디딜 틈 없던 동네 어쩌다

후세는 과거 쇼와 시대(1926~1989년) 때부터 번성했던 도시다. 1914년 후카에 역이 개통돼 1925년 후세역으로 개명됐다. 이 구간은 오사카시와 나라시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후세는 간사이 지방 교통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1950년대 후반부터 후세역 앞으로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상점들은 어느새 아기자기한 길이라는 의미의 ‘쁘리로드’와 활기찬 꽃길이라는 뜻의 ‘플라워 로드 혼마치’ 등 상점가로 성장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1970년대에는 자전거를 타고 이 거리를 지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일본에 들이닥친 저출생·고령화 영향에 후세의 기업들이 줄도산하며 침체기를 맞았다. 여기에 전철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오사카시 난바 지역에 대형 쇼핑몰이 줄줄이 생겨나며 후세는 더 위축됐다. 상점가 내 700여 곳의 가게 중 반절, 350곳이 문을 닫는 지경에 다다랐다. 이내 상점가는 문 닫은 가게들의 셔터가 줄줄이 내려가 있는 거리를 뜻하는 이른바 ‘샷다도리(シャッタ通り)’라는 오명을 샀다.

■마을 전체를 호텔화한 구세주

그러나 후세의 역사에 주목한 한 부동산 회사가 이 지역에 호텔을 짓게 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2018년 9월 25일 ‘세카이 호텔’이 문을 열었다. 곳곳에 방치된 건물 10채를 사들여 객실 30곳을 만들었다. 폐점한 지물포·과자·마사지·카페 등 가게를 사들이면서 되도록 외관은 유지한 채 내부를 꾸몄다. 가급적 고풍스러운 거리 느낌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호텔 손님들은 아직 하얀 여성복 간판을 그대로 붙이고 있는 프런트에서 20여 분간 직원들에게 이용 안내를 받고 객실로 향한다. 프런트를 나와 객실로 가는 길은 호텔 내부 엘리베이터도, 복도도 아니다. 상점가 골목길을 지나 배정받은 호실로 가는 방법이다. 호텔 내 사우나·레스토랑도 없다. 이용을 원하는 손님은 ‘패스권’을 들고 호텔과 협약을 맺은 동네 목욕탕과 식당 등을 방문하면 되는 식이다. 무료·할인 등 혜택을 받는다.

세카이 호텔 매니저 오카모토 카노(23) 씨는 “쇠퇴한 후세 지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자는 취지로 이 호텔이 지어졌다”면서 “후세의 빈집·상점·건물을 활용해 객실로 만들고 인근 가게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현지 일상을 체험할 수 있게,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 받아들이며 원주민도 웃음꽃

후세는 거리에 외지인이 늘어나면서 생기가 되살아났고 실제 일부 가게는 매출도 올랐다. 오코노미야키 가게 직원 나카노(22) 씨는 “단골들 사이 간간이 세카이 호텔 손님들이 보이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곤 다시 찾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인근 술집 사장인 카나오카 시게아키(33) 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술을 마시다 현지인과 친해져 같이 2차를 나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일주일에 10팀 이상 호텔 숙박객이 방문하는 것 같고, 영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후세 현지를 찾는 관광객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호텔 측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5년간(9월 기준) 호텔의 숙박객은 20배나 증가했다. 연도별로 △2021년 500명 △2022년 2000명 △2023년 5000명 △2024년 6000명 △2025년 1만 명을 기록 중이다. 오카모토 씨는 “현재 숙박객 약 80%가 쇼와 시대를 느끼기 위해 방문하는 일본인들”이라며 “외국인 관광객도 점차 늘고 있어 외국어가 능통한 직원을 채용하는 등 대응책을 꾸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적용 가능 모델”

우리나라 소멸 위기 지역에서도 후세와 같이 지속 가능한 선순환 사례를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사카 세이케이대학 경영학과 이미화(51) 교수는 “요즘엔 본인이 직접 체험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한다. 세카이 호텔은 매력적인 경험으로 젊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노인들만 남은 동네를 리뉴얼해 젊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고 경제가 순환하게끔 만든 시스템”이라며 “한국에서도 ‘일상+관광’이라는 힌트를 응용할 필요가 있다. 인구 소멸, 빈집 등이 심화한 지역 역시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역사는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상품화하느냐 이렇게 한 지역이 살아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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