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 중심 한류의 흐름을 부산으로 끌어오자
최환진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 집행위원장
최근 영화 ‘케데헌’의 전 세계적 흥행을 계기로 한류 열풍이 다시 거세게 불고 있다. 전 세계 젊은 세대가 K콘텐츠를 즐기고, K푸드·K뷰티·K패션에 주목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으나, 그 중심에는 여전히 서울이 있다. 고궁, 쇼핑 거리, 공연장, K팝 이벤트 등 서울은 글로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한류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반면 부산은 여전히 한류 관광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부산은 짧은 도시 역사로 인해 고궁이나 대형 랜드마크가 부족하다. 이는 관광 자원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지만, 서울과는 다른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부산이 진정으로 한류의 제2거점으로 성장하려면 부산만의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을 모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자원을 살린 차별화된 접근이 중요하다. 그 시작점은 상징적 랜드마크 조성이다. 개발을 추진 중인 황령산 전망대와 같은 공간은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거점으로, 스토리와 체험을 결합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단기간에 인프라를 확충하기 어려운 만큼 부산은 소프트웨어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먹거리·볼거리·즐길 거리를 재해석해 ‘부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어매니티(amenity), 즉 체험의 질과 편의성을 강화해 관광객이 머물고 싶어지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BOF),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MAD STARS), 부산콘텐츠마켓(BCM) 등 국제적 행사가 부산의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제는 전 세계 영화인과 관객을 끌어오고, BOF는 K팝과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를 모은다. MAD STARS는 광고·마케팅 산업을 통해 부산을 한류 콘텐츠의 발신지로 끌어올리고, BCM은 방송·영상·미디어 산업의 교류 플랫폼으로서 생태계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벤트만으로는 관광객의 상시 유입을 담보하기 어렵다. 축제 이후에도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상설 콘텐츠와 체험 공간이 필요하다.
한류 전략은 단순한 관광정책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핵심 축이 되어야 한다. 문화·관광·산업을 결합한 장기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부산은 서울의 보조 무대가 아니라 글로벌 관광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특히 바다와 항만이라는 부산만의 지리적 특성은 콘텐츠 산업과 결합할 때 새로운 관광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부산이 한류의 흐름을 따라가는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협력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자체와 부산일보를 비롯한 지역 언론, 지역 기업, 지역 대학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 부산콘텐츠마켓 조직위원회가 주체적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 수립, 여론 형성, 투자·후원, 연구개발, 인재 양성, 콘텐츠 기획과 운영이 긴밀히 연결될 때 실효성 있는 실행안이 만들어지고 강력한 추진 동력이 생겨난다.
한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주체들이 긴 시간에 걸쳐 축적해온 결과다. 서울이 중심 무대로 자리잡은 것도 문화, 정책, 산업, 인프라가 결합된 결과였다. 부산이 한류의 제2거점으로 도약하려면 같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부산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부산의 지리적 이점을 살리고, 부산만의 끈끈한 정(情)을 담는 차별화 포인트를 출발점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종합 전략을 짜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와 지역 언론, 지역 기업, 지역 대학과 지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 주최측 등 지역사회의 주요 기관, 단체가 협력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중단기 실행을 분담하여 추진할 때, 부산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하는 또 하나의 한류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 누가 깃발을 들고 앞장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