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침을 열던 소리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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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지만 기자가 학교에 다닐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다.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 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곤 했다. 먼저 담임 선생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양팔을 앞뒤로 벌려 친구들과의 간격을 넓혀 체조 대형을 갖췄다. 이어 힘찬 구령과 함께 음악에 맞춰 전교생이 체조를 했다. 바로 국민체조였다. 대부분의 학생은 즐겁게 따라 했지만 그중에는 마지못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년 시절을 국민체조와 함께하며 자랐다.

국민체조는 1977년 3월부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정부가 학교를 중심으로 보급했다. 공공기관에서도 매일 국민체조를 할 정도였다. 심지어 오전 6시 라디오에서 국민체조 구령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소요 시간은 5분 남짓으로 별도의 준비물도 필요 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보급되자마자 급속도로 퍼졌다. 국민체조는 준비운동인 제자리 걷기를 제외하고 숨쉬기부터 숨 고르기까지 총 12개 동작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는 신나는 동작도 있는데, 바로 온몸을 사용해 노를 젓는 동작이다. 이 동작을 할 때 아이들은 격한 움직임을 하다 보니 친구에게 피해를 주어 선생님께 혼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세월이 지나 국민체조는 1999년 ‘새천년 건강체조’로, 2010년에는 다시 ‘국민건강체조’로 대체됐다. 일각에서는 집단 체조 자체가 ‘구시대 유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체조는 빠른 속도의 버전까지 등장했고 다양한 콘텐츠로 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우렁찬 목소리로 아침마다 우리를 깨워준 국민체조 속 목소리 주인공인 유근림 경희대 체육대학 명예교수가 최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당시 체조선수들을 불러 20명 정도 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국민체조 동작을 시키고 직접 구령을 붙였다고 한다. 정작 고인은 국민체조를 만든 대가로 따로 보수를 받은 적도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민체조는 근육 이완이나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히는 준비 운동으로 충분히 효과적이다. 목과 어깨 등을 움직이는 동작이 많아 평소 운동이 부족할 수 있는 상체 관절을 풀어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운동할 시간이 부족한 고3 학생들에게 잠시 짬을 내 국민체조라도 해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국민체조 시~작’. 지금도 이 구령을 들으면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대한민국 체육 교육과 건강 증진에 기여한 유 교수의 명복을 빌어 본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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