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주항공 참사, 인재인지 규명하고 방지책 세워야
정진교 부산과학기술대 첨단공학부 교수 겸 건설생산기술연구소장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승무원과 탑승객 179명이 사망하였다. 태국 방콕발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가 설치된 둔덕을 들이받은 것이다.
7일 열린 국토교통부의 참사 관련 브리핑에 따르면, 국토부는 이번 사고가 항공기와 새 떼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공항 관제탑이 사고기에 조류 충돌을 경고했고, 조종사는 조류 충돌에 따른 메이데이(조난)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이어 랜딩기어(이착륙 바퀴)가 펼쳐지지 않은 상태로 착륙하다가 활주로 외벽과 충돌해 폭발과 화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79명 희생 국내 최악 항공기 사고
조류 충돌이 원인 제공했을 것 추정
로컬라이즈 둔덕이 피해 규모 키워
콘크리트 구조물로 강화, 납득 안 돼
무안공항 시설·운영 철저한 조사를
안전성 확충으로 사고 재발 막아야
거의 모든 탑승자가 숨지고 2명만 구조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조사 당국은 이토록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여객기 동체와 충돌한 활주로 시설물이 기준에 맞는지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의구심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은 활주로 외벽 앞 구조물인 ‘로컬라이저 안테나’가 사고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공항공사는 2020년 로컬라이저 개량사업에서 부서지기 쉽게 만드는 방안을 확보하란 지침을 내리고도 콘크리트 구조물을 강화한 설계를 수용해 시공하였다. 이 구조물과의 충돌이 없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공항공사, 국토부 항공청을 대상으로 구조물 설치와 승인, 운영 과정 모두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착륙을 돕는 계기착륙시스템(ILS)의 하나로 통상 충돌 시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로 만들어야 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매뉴얼은 ILS 설치 기준으로 로컬라이저의 기능과 위치, 높이, 방향 등은 물론 활주로 안전지역, 표면 상태 등을 적시하고 있다. 악천후나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특히 활주로 주변에 항공기 운항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활주로와 인접 안전지역에 설치되는 물체나 시설이 쉽게 부서지거나 변형될 수 있도록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오버런’ 상황에서 충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더구나 무안공항 활주로는 약 2.8㎞로 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짧은 편이다. 이에 활주로 연장 공사를 진행 중이었으며, 이 공사 탓에 활주로는 300m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실제 이용 가능한 거리는 2.5㎞에 그쳤던 셈이다. 외국의 활주로가 짧은 공항들은 비행기의 오버런 사고에 대비해 완충장치인 이마스(EMAS)를 도입하고 있다. 가볍고 잘 부서지는 블록 등으로 만들어진 이마스는 활주로가 짧은 공항에서 항공기와 부딪히면 즉시 파괴되어 동체 속도를 급속하게 줄여준다. 해외 공항들의 대응체계가 이러한데도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2007년 개항하고도 국제선 정규 노선을 운영한 적이 한 번도 없던 무안공항에 제주항공이 지난해 12월 무안~방콕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17년 만에 운영하는 첫 정기 국제선 운항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참사가 12·3 비상계엄 사태만큼이나 부끄럽다. OECD 선진국 국민의 자부심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듯하다. 국제선 운영에 앞서 적합한 검토와 점검이 있었는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무안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 선심성 공약이라는 지적 속에 사전 정밀조사와 검증단계 없이 한화갑 전 의원의 주도로 건설되었다. 이밖에도 정치인의 공약성 개발은 타당성이나 경제성, 필요성 검증 없이 환경파괴와 난개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바라보며 재정 투입에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다. 국토부는 관련 학회 등과 연계하여 전문가의 관점에서 무안공항 시설물 점검을 실시해 참사의 인재 가능성 여부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특히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신규 건설에 앞서 기존에 만들어진 시설물의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기초 인프라를 이미 갖춘 대한민국이 국민의 생명이 걸린 안전 확충에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으고, 예산 확대 정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