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혀 깨물어 옥살이한 10대 소녀… 60년 만에 재심 길 열려
대법원, 재심 청구 기각한 원심결정 파기
2심에서 변수 없으면 재심 인정될 전망
6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말자(78) 씨가 결국 재심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 씨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등 최 씨가 주장한 재심 청구 사유에 신빙성이 있다며 법원이 이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 씨가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년 7월 초순경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1964년 9월 1일까지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 “원심은 최 씨 진술의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조사를 했어야 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도록 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파기환송 후 2심에서 최 씨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고 볼 새로운 사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재심 청구는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 씨에게 60년 전 판결처럼 중상해죄가 인정될지, 정당방위로 무죄에 해당할지는 실제로 재심이 진행되면 본안 재판에서 다시 다투게 될 전망이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께 경남 김해 한 마을에서 사건에 휘말렸다.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밤길을 걷던 중 노 모(당시 21세) 씨와 마주쳤고, 노 씨는 최 씨를 덮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최 씨는 입안에 들어온 노 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다.
노 씨의 혀가 1.5cm 정도 잘리자 최 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중상해 가해자로 몰렸다. 검찰은 최 씨를 구속했지만, 정작 노 씨는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됐다. 수사기관은 “둘이 결혼하면 간단히 끝나지 않느냐”고 했고, 재판부도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결혼을 권했다.
최 씨는 1965년 1심 재판에서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 씨에겐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구속수사를 받은 최 씨만 6개월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셈이다.
최 씨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 등에서 다뤄졌다.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최 씨는 사건 56년 만인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등법원은 “반세기 전 사건을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이 변화된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심리 끝에 최 씨 주장이 맞는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관한 일관된 최 씨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간접의 증거들, 즉 재심 대상 판결문, 당시의 신문 기사, 재소자인명부,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등에 의해 알 수 있는 일련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사정들이 제시됐다”며 재심 청구를 바로 기각할 게 아니고 법원이 사실 조사를 거쳐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