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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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인간은 위험을 알아차리는 본능적 존재
하루하루가 쌓여서 삶은 이어지는 법
사람과의 관계, 일상의 소중함 되새겨야

부산 중구 동광동에 ‘강나루’라는 간판을 단 주점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이상개(1941~2022) 시인 내외가 운영하던 식당이었지요.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진을 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알 만한 분들은 아실 겁니다. 말수가 적은 시인은 그곳엘 드나드는 손님들과 자리를 옮겨가며 술잔을 기울이면서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시단의 원로였지만 일부러 자신을 내세우거나, 후배 문인들에게 핀잔을 준다거나 윽박지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그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는 숨겨진 힘을 지닌 어른이셨습니다. 그런 그의 성정이 한편으로 미적지근하다 해서 어떤 이들은 ‘우유부단 학파’의 우두머리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지요. 그는 한결같은 태도와 어조로 사람을 대했습니다. 모처럼 주점엘 들른 젊은 후배 시인에게는 예의 낮은 목소리로 “요새 별일 없제?” 묻곤 했습니다.

과묵한 말수와 함께 젖어 드는 그의 온화한 기품에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냈습니다. 그는 몇 마디 응수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뿐 굳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서 삼삼오오 찾아오는 손님들은 그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문학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있습니다. 늘 보아오던 사람이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더러 언쟁을 높이면서도 결국엔 손을 맞잡고 화해하면서 술잔을 부딪칩니다. 불콰해진 얼굴마다 자신의 예술과 삶의 태도가 각인되어 있는 예술가들은 하루의 피로를 안방처럼 온기가 번지는 주점에 모여 녹이곤 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한때처럼 느껴집니다. 정치나 경제 상황이 안 좋아도, 서리처럼 차가운 공기가 사회를 감돌아도, 우리는 자신이 견디고 지켜낸 하루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저마다 간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신분적 차등 의식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각자 일구고 있는 삶의 모양과 각도를 서로 존중하면서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하루하루는 견디기 벅차면서도 어쨌든 내일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한 시간의 경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는 중에 사랑을 갈구하고, 친절을 내보이고, 정직을 바라고, 밝은 사회를 꿈꿉니다.

어제 지나쳤던 골목과 사람을 오늘도 만납니다. ‘하루’는 이 크나큰 우주를 떠올리면 아무렇지도 않고 사소한 시간의 범주이지만, 하루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한정된 일을 하거나 한정된 사람을 만납니다.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루를 쪼개어 마치 사나흘처럼 보내기도 합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은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거나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중 나온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기지개를 켭니다. 여기에는 살아온 삶의 이력이 보여주는 호흡의 길이만큼만 차이가 날 뿐, 무의식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작동합니다. 이것이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이라는 사실을 별스럽게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세력이나 존재가 평온한 일상을 찢고 침투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뿐만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는 타고난 감각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3일 밤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지만, 이내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과 국회를 에워싸면서 반헌법적인 계엄에 반대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습니다. 그 뒤 전국 각지에 몰려든 시민들의 요구와 함성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보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자신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친밀한 대화에 익숙하고 몸으로 느낍니다. 한국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이런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근거한 판단과 움직임으로 오늘을 이룩했습니다. 텅 빈 주점에 앉아 말없이 술잔을 비우던 시인, 하루를 보내고 또 다른 하루를 기다리며 지난 삶의 여정을 곱씹고 문학을 가늠했던 시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다리고 꿈꿔 온 시간을 조용하게 갈망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은 그러한 기다림을 두고 이렇게 읊조리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아니 우리가 질러가는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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