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통영의 김홍도
단원 김홍도는 조선시대 후기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영조, 정조 시대에 활약한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김홍도의 속화첩 그림들을 보면 선조들이 힘든 삶에도 나름대로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익살스럽고 정감 가득한 작품은 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방렴에서의 어로’가 대표적이다. 방렴은 조선시대 말기까지 통영·거제·고성 남해안 일대에서 번성했던 어로 방식이다. 바다에 세운 울타리에서 물고기를 잡아 배에 건네는 사람, 물고기를 삶는 솥단지도 보인다. 바다 한가운데 설치된 방렴을 그리기 위해 김홍도는 직접 배를 타고 현장을 방문했을 것이다. 난생처음 출렁이는 뱃전을 부여잡고, 어민들의 고기잡이를 바라보는 김홍도의 호기심과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육각과 무동’도 그렇다. 북, 장구, 피리, 대금, 해금 악사들이 둥글게 앉아 연주에 몰두하는 가운데, 무동이 덩실덩실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신명 나게 춤을 춘다. 그림을 한참이고 들여다보면, 피리와 장구 가락, 무동의 소맷자락 스치는 바람 소리, 얼씨구 하며 어깨춤을 추었을 김홍도의 흥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이런 김홍도의 서민적 화풍은 그가 26살인 1770년(영조 46) 경남 통영 통제영에서 화사군관으로 근무했던 경험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통영이 그의 예술 세계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화사군관은 조정에서 감영이나 통제영 등 상급군영에 파견한 도화서 화원을 지칭한다. 그림 속의 무동과 함께 육각이라고 이르는 연주·연행 문화는 통영 현지에서 세습 무가에 의하여 그 후 270년 이상을 전승돼 남해안별신굿 등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19~20일 경남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역사관에서 열리는 ‘2024국가무형문화유산 남해안 별신굿보존회 학술대회’에서 이훈상 동아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조선 후기 통제영 세병관의 통제사 기념 기문 현판의 제작 전통과 화사군관 김홍도 속화첩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란 주제의 학술 발표로 재조명됐다.
국난으로 부를 정도로 어려운 시대다. 2025년 을사년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김홍도의 그림처럼 선조들이 유머와 재치로 역경을 극복했다면, 눈앞의 어려움도 한국인 특유의 흥과 끈기를 잃지 않는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섣부른 꿈이라도 꾸고 싶다. 이번 겨울, 김홍도의 발길을 따라 통영 충렬사와 세병관을 찾아야겠다. 옛 어른들의 기운이라도 빌려야겠기에….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