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마지막 지상(地上)에서
김현승(1913~1975)
산 까마귀
긴 울음을 남기고
지평선을 넘어갔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 중에서
아, 나의 ‘넋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무한우주에 과연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나의 의식은 아직 명료해 보이지만 존재의 토대는 흐릿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어느 시간대를 지나고 있으며, 어느 공간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안타깝고 서러운 독백이 절로 나온다.
이 시는 김현승 시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절명시(絶命詩)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태인데도 ‘사방이 고요하’고,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죽음도 그저 일상일 따름인가? 그래서 묻는다. 나의 넋이 죽음 너머 ‘그 나라의 무덤’에 드는 일도 ’평안‘일 수 있는가? 슬픔이 물처럼 차오른다. 안타까운 마음에 불멸의 혼을 부른다. 나의 넋이여, 그대는 여전히 존재하는가? 삶이 궁극에 이르면 시는 처연해져 신을 부르고, 신의 소리를 낸다. 천지로 퍼져가는 신혼(神魂)의 소리는 시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