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내일이 있는 그림책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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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아동도서전 출발 성공
급성장 한국 그림책 생태계 개선
내년 ‘그림책의 해’ 더 큰 도약을

지난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주제 세미나 '그림책이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에서 권윤덕 작가가 그림책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금아 기자 chris@ 지난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주제 세미나 '그림책이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에서 권윤덕 작가가 그림책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금아 기자 chris@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한국 소설가 한강. 노벨상 시상식을 위해 스웨덴에 간 한강 작가는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린드그렌이 생전에 거주한 아파트를 방문했다. 한 작가는 스웨덴 한림원과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린드그렌의 장편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좋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성장기에 깊은 인상을 남긴 책. 누군가의 시작에 함께할 특별한 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렸다. 어린이책 전문 전시회를 처음 접한 것은 10년 전이다.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린 도서전 ‘그림책 뮤지엄’에 갔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책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국내 첫 대규모 아동도서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반가웠던 이유다.

‘어린이 그림책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플랫폼인 동시에 아동을 위한 책 축제를 만들자.’ 아시아 대표 아동 콘텐츠 플랫폼을 목표로 출범한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6개국 193개 단체가 참여한 도서전은 인파로 북적였다. 각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고르고, 작가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마임이스트의 책 읽어주기 퍼포먼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 강연, 북토크,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폐막이 가까운 시간까지 책의 바다를 항해 중인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한국 그림책의 성장이 눈부시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한국 그림책의 기세를 느꼈다.”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유럽과 미국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한국 그림책은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말이다. 기자가 그림책 수집을 시작한 10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다르다. 다양한 주제와 새로운 표현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K그림책이 쏟아진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백희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이수지 작가 등 세계적 그림책상 수상 소식도 이어진다. 일본에서는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들의 그림책 읽기 모임도 생겼다. 도쿄 신주쿠 한국어다독회, 아이치현 한국어그림책다독회에서는 소정의 회비를 낸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국어로 된 그림책을 읽는다. 꾸준히 한국 그림책을 접한 이들에게서 ‘한국 그림책은 어른까지 독자로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한국 그림책에는 독창적 세계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K문학 활동가인 한 일본인은 한국에는 그림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작가가 육성되는 토양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현지 언론인도 최근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 그림책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마지막날 ‘그림책이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권윤덕 작가와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가 연사로 참여했다. 권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꽃할머니〉를 시작으로 〈나무 도장〉 〈씩스틴〉 〈용맹호〉 등 전쟁과 폭력, 가해와 피해의 문제를 그림책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아 매일 1시간 이상 신문을 본다는 권 작가는 2022년부터 2년 동안 진행한 민주인권그림책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았다.

새벽배송과 유아돌봄 사이 노동의 순환 과정을 소개하고, 일상 속 폭력을 고뇌하는 아이를 보여주고, 유기견 문제를 이야기하는 민주인권 시리즈를 보면 그림책이 어른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은 평론가는 미래를 알려면 아동문학·그림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는 지금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날 사람이고, 현실의 문제를 가장 마지막까지 바꿀 사람이기에 어린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를 이야기한다고 무겁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낮게 핀 민들레를 통해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키우고, 일하는 엄마·아빠를 통해 가족을 이해하고, 친구와의 갈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장한다. 펑크 난 타이어에서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찾고, 이별에 슬퍼하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그림책도 있다. “그림책은 인간 공통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어서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림책테라피스트 오카다 다쓰노부는 그래서 그림책은 문화와 역사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여름 ‘그림책 문화의 현재와 미래’ 포럼에서 그림책 만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출판인쇄 산업에 대한 예산 삭감의 영향이다. 한국 그림책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그림책을 만들고 파는 출판사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2025년은 책의 해 추진단이 정한 ‘그림책의 해’이다. 생산·유통·판매·독서까지 그림책 생태계 개선으로 K그림책이 큰 나무처럼 단단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바다 건너 누군가의 마음에 한국 그림책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날을 기대한다. 우리는 모두 그림책 독자가 될 수 있다.

오금아 콘텐츠관리팀 선임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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