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지방 자치사'에 오점 남긴 반쪽 인사권 독립
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통영시의회 의장은 배도수를 지방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관할 수사기관에 수사의뢰하시기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된 ‘12·3 비상계엄’ 선포 일주일 전, 행정안전부가 공문을 통해 경남 통영시에 요구한 내용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대한민국 헌정사의 오점이라면 이는 지방 자치사에 기록될 오점이다.
시작은 넉 달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영시는 7월 9·10일 자 인사에서 4급 이하 공무원 261명에 대한 승진·전보를 단행했다. 여기엔 시의회 사무국 소속 5급 1명, 6급 2명, 7명 1명에 대한 집행부 파견근무도 포함됐다. 집행부 자원과 맞교환하는 ‘상호 파견’ 형태로 기간은 1년이다.
그런데 이 중 6급 A 씨 등 2명은 집행부 근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제27조의5 제4항)은 ‘인사교류를 하는 경우 본인 동의나 신청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선 행안부 질의를 통해 위법 소지를 인지한 사무국은 인사권자인 배도수 의장에게 ‘불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배 의장은 강행을 요구했고, 담당 팀장과 국장은 위법한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며 집행부에 보낼 공문 결재를 거부했다. 그러자 배 의장은 직권으로 A 씨를 포함한 사무국 직원 4명 파견을 통보했다.
행안부는 “배도수 의장은 위법한 사실을 알고도 1인 단독으로 수기 결재하고 강제로 인사교류를 추진해 인사행정 신뢰를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용권자라는 직위를 이용해 고의로 인사발령을 하는 등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하였으므로 관련기관 수사가 필요하다”며 이례적으로 수사 의뢰까지 요구했다. 고의성이 다분한 만큼 형사적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행안부에 앞서 경남도소청심사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소청심사는 공무원 처분에 대해 부당함을 다투는 절차다. 소청위는 두 달여 심의 끝에 A 씨가 제기한 ‘파견발령 처분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A 씨 파견 명령이 포함된 인사명령은 무효화 됐고, A 씨는 지난달 29일 시의회 사무국으로 복귀했다.
이를 두고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1월 13일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에 따라 지방의회 의장은 의회 사무국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전반기 의장을 지낸 김미옥 의원이 이를 근거로 자체 승진 인사를 예고하자 통영시가 발끈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지역구 국회의원 중재로 겨우 일단락됐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인 올해 초 인사를 앞두고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며 통영시와 시의회 관계는 다시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이 와중에 시장과 관계가 돈독한 배 의원이 후반기 의장에 당선되면서 사달이 났다. 배 의장은 의장단 선거 직후 A 씨 등을 전임 의장 측근이라며 보복 인사를 예고하더니 취임 직후 실행에 옮기는 무리수를 뒀다.
결국 설익은 인사권 독립이 불러온 후유증인 셈이다. 의장이 쥔 인사권은 사실 ‘예산편성권’과 ‘조직구성권’이 없는 반쪽짜리다. 인사권 독립은커녕 상호 감시와 견제조차 불가능한 구조다. 집행부와 의회 간 갈등 여파는 오롯이 시민이 떠안아야 한다. 지방자치 의미와 기능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일련의 사태는 두고두고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