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등록 동거혼' 어때요?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정우성·문가비가 촉발한 비혼 출산
전통적 가족·결혼 제도 의문 제기
청년층 절반 “결혼 않고 출생 가능”
유럽 동거 신고로 세금·복지 혜택 제공
정상 가족 단어가 누군가에겐 폭력으로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형태 포용해야
나는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의 세대를 살았다. 어른들의 아들·딸 차별도 은연중 받아들이며 자랐고, 적당한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아이도 낳고. 그렇게 세상이 정해준 제도와 틀에서 사는 삶을 ‘정상적’ 삶이라 여기는 세상 속에 살았다. 한때 우리에게 먹먹한 체증을 남겼던 그 소설이 나온 지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얼마 전 모델 문가비가 결혼 여부나 친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서 출산 사실을 고백했고, 뒤이어 그 친부가 배우 정우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상은 떠들썩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문가비,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결혼은 하지 않고, 자녀 양육만 책임지겠다는 정우성에 대하여,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지 않는다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도 서로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마당에, 함께 아이를 낳았다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불문하고 혼인을 해야 하고 부부로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세상의 이런 시선 때문인지, 이혼소송을 하다 보면 ‘사랑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했다는 커플’, ‘헤어졌지만, 나중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 다시 만나 혼인신고를 했다는 커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경우를 보면서, 아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법이 꼭 전통적인 가족과 결혼 제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많다.
1년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동거하는 남녀에게도 가족 지위를 인정하여 법적·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의 ‘등록 동거혼’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법안 발의로 이어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는데, 모델 문가비와 배우 정우성의 ‘비혼 출산’은 다시금 비혼 출생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조명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혼인 외 출생아는 1만 9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4.7%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20~29세 청년층의 42.8%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지만, 아이를 출산할 세대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겼던 그 ‘정상적 가족’의 기준이 의미가 모호해졌다면 법과 제도도 그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등록 동거혼’이나 ‘생활동반자법’ ‘동반가정등록제’ 등 비혼 출산의 지원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 제도 도입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도 재점화해야 한다. 1990년대 말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이 도입한 ‘등록 동거혼’은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시청에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기존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복지 혜택 등을 제공하는 제도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은 세금, 사회보장, 주거 계약 등에서 결혼한 커플과 유사한 권리를 누리면서도 재산은 각자 관리하고, 동거혼의 해소는 커플 중 한 명이 시청에 ‘해지 요청’을 하면 소송 없이도 가능하다. 결혼과 달리 등록 동거혼은 배우자 가족과 인척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데, ‘시월드’ ‘처월드’와의 갈등으로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 제도가 출산율을 높인다는 통계는 없지만, 프랑스 합계 출산율이 1.82명으로 높은 편이고, 비혼 출산율이 60%에 이르는 것을 보면, 결혼에 대한 부담감으로 출산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해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러한 제도 도입이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고, ‘동거’의 정의와 요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또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주요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결혼율과 출산율로 국가 존립의 위기까지 온 상황에서,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미 태어난 수많은 비혼 출산 아이들이 부모의 결혼 여부에 따라 ‘혼외자’라는 사회의 비판적 시선에 상처받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태어난 귀한 아이들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함께 양부모의 실질적 양육 참여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얼마 전 방영된 ‘조립식 가족’ 드라마는 가족의 정의와 형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주인공은 “서류상 가족이 뭐가 중요해요? 서로 가족이라 생각하면 가족이지. 그걸 뭐 꼭 종이 쪼가리로 확인받아야 해요”라며 세상의 편견에 맞선다. ‘정상’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지 않도록 동거 커플, 비혼 부모,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 법적·사회적 논의를 통해 ‘등록 동거혼’ 제도를 신중하게 설계한다면,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