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민주주의의 적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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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적' 독선에 빠진 윤 대통령
소통 대신 폭력 선택 국가 혼란 초래
대화와 협력은 민주주의의 본령
탄핵 이후 정국 수습 원칙 돼야
거리의 국민들 민주주의 새 역사
이제는 정치권이 변해야 할 차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빚어졌던 극도의 혼란이 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11일 만에 한 막이 마무리됐다. 참담함과 공포, 그리고 희망이 교차한 시간이었다.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에도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민주주의 수호였다. 탄핵 이후 질서 있는 수습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비롯해 이후 내놓은 대국민 담화들은 ‘민주주의의 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을 ‘범죄자’,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어떤 근거도 들지 않고, 느닷없이 국회 활동을 정지시키고 국회에 군대를 보내 한순간에 나라를 거대한 혼란에 빠뜨렸다.

국회의원이 민의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 대통령이 국회를 부정한 것은 정부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삭감해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거대 야당과 극한의 대치 속에 대통령이 선택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물리적인 폭력이었다.

다수의 국민이 비상계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 지점이다. 민주주의는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권력자가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민주 사회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와 소통하는 방법은 대화와 협력뿐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이 존재할 공간을 내어주며, 힘들더라도 끊임없이 이견을 조율하는 것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는 또렷하게 보여준다.

탄핵 이후 국정은 국회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재명 포비아’에 갇혀 대통령 탄핵에 다수가 반대한 국민의힘 의원들과 수차례의 특검과 탄핵으로 국정을 가로막았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상황이다. 여태까지 보여준 행태를 보면 여야가 수준 높은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보여줄지 의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본령을 훼손해선 안 되며 하루빨리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을 여야 모두 엄중하게 받아들이길 간절하게 바란다. 국가의 안위가 어느 때보다도 우려스러운 시기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불안한 것은 안보 공백이다. 비상계엄에 주요 군 수뇌부가 연루되면서 군 지휘 시스템은 큰 손상을 입었다. 진실 규명을 위한 군 수뇌부의 각종 증언 과정에서 주요 정보가 노출되고, 우리나라 최고 부대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군인들은 계엄군이라는 오명에 극심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 북한이 도발이라도 하지 않을지 불안하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군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단호하되, 폭로와 처벌에만 몰두해 혼란을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조속히 군의 사기와 기강을 다잡는 데에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 상황은 암울하다. 한국은행은 내년에 이어 2026년에도 1%대 경제성장을 예측했다. 우리 경제는 IMF 외환위기나 코로나 등의 외부 변수가 발생했을 때에나 1%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데도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1%대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며 저성장의 고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게다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미 수출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반면 국내 소비 심리는 비상계엄 여파로 더욱 얼어붙었다. 노무현과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의 탄핵과 달리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나 반도체 호황 등의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경기 침체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대미 통상 대응이나 금리 인하, 내수 진작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제적인 정치 후진국으로 전락할 뻔했지만,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나온 국민들은 시위 현장을 축제로 만들며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썼다. 시민들은 수많은 인파가 몰린 시위 현장에서도 쓰레기를 정리하고 질서를 지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정치권 차례이다. 자신의 입장에 매몰되어 상대를 악으로 규정한 나머지, 어이없는 선택으로 국가를 큰 혼란에 빠트린 윤 대통령의 과오를 답습하지 말길 바란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와 협력 능력이 떨어지는 정치인을 둔 고통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

송지연 기획취재부장 sjy@busan.com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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