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어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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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성 수필가

적어도 함께 사는 동안은
그 한 사람이 전부여야 하는데
나는 온전히 하나이지 못했어
내게 속은 거지…
어쩌면 속아 주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

그는 몇 년간 아내를 간병하는 것으로 보냈는데, 아내가 희귀병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목덜미로 훈풍이 불어와도 봄을 느끼지 못했고, 산이 꽃으로 뒤덮여도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목련꽃 향기가 거리를 적실 때도 처음 그 향기를 맡았을 때의 설렘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한여름 소나기가 마른 땅을 때리며 먼지를 일으킬 때도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천지가 붉은 빛깔로 물들어 산 위를 흐르는 바람조차도 빨갛게 물들어 적적하게 우는 가을이 되어도, 그는 들국화처럼 처연한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눈 덮인 하얀 산을 바라보아도, 북풍을 버티고 선 헐벗은 나목들을 보아도 그 담백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간병 기간 동안, 그녀와 둘이서 차로, 비행기로, 기차로 수없이 서울로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 길에, 구름이 한가롭게 떠다니는 가없는 하늘과, 게으른 소처럼 길게 누워 하품하는 산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점점 여위어 가는 아내의 모습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긴 한숨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 그는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참혹하도록 슬픈 모습이어서, 그가 정말 그 여인을 사랑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죽음 후, 그는 생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의 아내가 처녀 때 찍은 사진들을 들추어 보면서, 그녀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복스럽게 생긴 소녀였다거나, 그녀가 끄적거린 낙서장을 보면서 그녀가 생각보다도 훨씬 보수적이면서도 친구들을 몹시 좋아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 등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가 없는 부엌을 기웃거리면서, 그녀의 부엌은 없는 것이 없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공간이었다는 사실, 집안 곳곳이 비상시를 대비하여 온갖 것들을 꼼꼼하게 숨겨 놓은 비밀 창고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녀가 집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일 등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생전에는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런 것들을 알아차려 가면서, 그녀의 삶이 그와 그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지키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함께한 세월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들추며, 아련함과 슬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그리움에 빠져들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가 매우 센티멘탈한 남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만 빠져나오게! 세상은 이렇게 밝은데 자네는 뇌 속에 저장된 그 어두운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네.”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아니!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 없네!” “무엇이 그리 미안한데?” 그는 좋은 남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온전히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야! 사랑한 척한 거야! 온전히 집중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 나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상상을 하곤 했어. 마음에 다른 무엇을 상상하면서도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던데, 내가 그랬던 거야! 적어도 함께 사는 동안은 그 한 사람이 전부여야 하는데, 나는 온전히 하나이지 못했어!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겠지, 내게 속은 거지…. 아니 어쩌면,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 주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 그는 아내에게 사랑을 빚진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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