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지금 이 순간, '시민 불복종'이 답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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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계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지난 7일 여당 의원 불참으로 무산
14일 다시 표결… 국민 눈·귀 온통 쏠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인 셈
소로 주장처럼 ‘양심’ 되돌아봐야
불의에 복종한다면, 당의 미래도 없어

“불의한 정부가 또 다른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요구한다면 나는 법을 어기라고 말하는 바이다.” 이는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저 〈시민 불복종〉에 나오는 말이다. 현대 민주국가는 법에 따른 지배를 확립하면서 공정성과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의로운 국가를 보장할 수는 없다. 불의한 정부가 등장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시민 불복종’은 종종 정부의 부당한 요구와 명령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쓰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70여 년이 지났지만, 소로의 말은 최근의 ‘12·3 비상계엄’ 정국과 맞물려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뜬금없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의 신속한 대처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위헌적이고 위법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의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는 부조리한 국가권력에 의한 사실상의 헌정 유린이었다. 일부 국무위원과 군, 경찰 고위 관계자들은 이러한 불의에 동조했으며 여당 의원들 또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지난 7일 대다수 여당 의원의 표결 불참으로 무산됐다. 대통령의 위헌적 행동에 대해 국회가 탄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여당 의원은 당파에 갇혀 이를 거부했다. 그들은 국민 대신 대통령을 택하고, 권력의 그늘로 숨어들었다.

14일 오후 윤 대통령 탄핵안이 다시 표결에 부쳐진다.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여기에 쏠릴 것이다. 표결 무산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당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2일 계엄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그는 “헌정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비상조치였다”라고 했다. 스스로 탄핵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권력을 뺏긴 걸 더 오래 기억한다”고 했다. 이게 권력의 속성이지만 여당은 알아야 한다. 여전히 정권이나 국가권력을 지키려 한다면, 오히려 당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국민의 시선은 차갑고 따갑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 했다. 죽기를 각오해야 그나마 당이라도 존립할 수 있다. 소로는 “개인에게 양심보다 다수가 우선이라면 도대체 양심을 무엇에 쓰라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양심적인 인간이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여당 의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다. 헌법 제46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에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이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한 지금, 여당 의원들이 정당법을 들먹이며 당론 뒤에 숨는다면 이는 진정한 입법기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당론이 불의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거나 불의한 결정이라면 소로의 말처럼 자신의 양심을 되돌아봐야 한다. 만약 이래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계엄령 발령 후 불법과 불의에 대항해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국회 앞에 집결한 시민들은 군경과 그들의 차량을 저지하며 저항하지 않았던가.

여당이 윤 대통령에 기대어 새로운 국면 전환이 있기를 은근히 바란다면, 이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설령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주장하듯이 소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지킬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이 국격의 추락과 이로 인한 국민의 상처와 아픔을 상쇄할 수는 없다. 국민을 처단의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것 자체가 지도자의 자격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탄핵 표결 불참이나 탄핵 반대는 자살골에 불과하다. 여당이 미적거리더라도 결국 시간에 달렸지 탄핵을 피할 순 없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국가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며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국민들의 관심 속에 2016년 잠시 귀국한 자리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시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시민의 자세가 여당에 절실히 필요하다. 앞서 안철수 의원처럼 양심에 따라 소신투표를 해야 한다. 개인의 양심과 헌법적 책임, 그리고 국민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으로 말이다. 다가오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여당 의원들이 양심을 따르기를 바란다. 불의·불법에 복종한다면, 당의 미래도 없다. 나아가 여당은 이 정국을 만든 것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더 늦기 전에 대국민 사과도 해야 한다. 이게 느닷없이 갇혀버린 ‘윤석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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