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제 태클 거는 정치권 어떡하나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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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부장

기업들 실적 감소 속 계엄·탄핵 직격탄
정치권 갈등에 왜 경제계 영향받나
이번 탄핵파동 앞선 두차례와 달라
정치권 자정 노력해야 한국경제 부활

“가뜩이나 힘든데 정치권까지 경제계에 태클을 거네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파동과 야당의 탄핵몰이로 온나라가 떠들썩한 상황에서 한 재계 인사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했다. 기업들마다 실적 감소로 울상인데 정치권은 민생이나 경제는 아랑곳않고 계엄에 탄핵을 외쳐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으로 인한 영향은 기업으로서 감내해야 할 몫이지만 국가 내부의 정치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빚어진 계엄과 탄핵의 여파는 경제계가 고스란히 맞으면서 곳곳에 피멍이 들고있다. ‘트럼프 2기 출범’과 수출 둔화로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에서 모든 수치들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대응 조치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국 경제가 정치적 리스크까지 추가로 안게 됐다”며 내년 한국에 대한 투자 의견과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이미 내년과 2026년 모두 1%대 저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금융 관련 정부 부처와 금융지주들은 연일 치솟는 환율과 추락하는 주가를 걱정하고 있다. 금융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올 하반기 접어들 때까지만 해도 수익성이 좋았지만 갑작스런 비상 상황에 송년회를 전면 취소한 채 연일 비상회의에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해외 주요 국가 정상들과 기업인들의 방문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주요 계약건이 미뤄지게 됐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다.

한국은 GDP 세계 10위의 강대국이지만 무역의존도가 75%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외국과의 교역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데, 이 같은 엄중한 상황을 한국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탄핵 사례가 빚어졌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 보고서를 통해 “2004년과 2016년 탄핵 사태때의 정치적 혼란은 당시 경제성장률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이번엔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와 달리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환경이 악화된 때문이다. “앞선 (탄핵 정국에서) 한국 경제는 2000년 중반의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지만 내년엔 한국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오히려 외부 역풍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은 후진적 정치 속에서도 경제가 신기하리만치 잘 버텨줬다. 조그마한 나라에서 반도체, 가전,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에서 글로벌 기술력을 과시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고, 그 덕분에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상황은 그동안의 성과들을 화산의 용암처럼 다 먹고들어갈 기세다. 여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주요 야당 정치인들은 ‘자기 생존’을 위해 ‘탄핵판’을 키우기에 여념이 없고, 계엄 사태의 주인공인 대통령은 소동만 일으키고 뒤로 나 앉은 모양새다.

아시아권에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국가는 태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때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라 불릴 만큼 탄탄한 제조 기반을 자랑했던 태국은 2006년 이후 20년 가까이 정치 혼란을 겪고 있다. 친탁신-반탁신의 분열과 갈등 속에 두차례 쿠데타와 세 번의 헌법 개정, 그리고 연이은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판결로 정국은 혼돈 속이다. 그런 가운데 경제는 천천히 무너졌고, 인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약진하는 사이 태국만 병들어가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와 현대차,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도 태국 대신 베트남을 투자처로 선택하고 있다.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체제이지만 정치적으로 안정된 때문이다.

이웃 일본도 1980년대를 전후로 한 고도성장 이후 더딘 경제발전으로 ‘잃어버린 30년’이 된 데는 자민당의 세습정치가 주된 요인이라는 얘기가 많다. 베네수엘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석유 매장량이 많은 국가 중에 하나이지만 정치적 혼란으로 수십년째 빈곤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태국이나 일본,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은 어느나라에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자정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이처럼 경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가 살려면 대통령이든 야당 대표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죄를 지은 정치인은 퇴출돼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들도 한국을 찾고 한국경제도 살 수 있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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