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K-민주주의의 명령이다 "싹 다 잡아 들여!"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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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사회부 차장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대통령을 위한 자기 방어, 자기 연민의 분풀이식 비상계엄이었다. 5000만 국민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공들여 쌓아 올린 한국의 위상과 경제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언제 또 총칼과 군홧발에 소중한 사람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하룻밤 새 전쟁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오늘도 밤잠을 이룰 수 없게 하는데 대통령은 그저 ‘불편’을 끼쳐 송구스럽다고 했다. 북한 오물풍선 원점타격 지시로 국지전 유도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에, ‘파리 목숨’을 붙들고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향해 많이 놀랐냐고 한다.

아울러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중대범죄 혐의자가 자신의 거취는 법적 권한이 있는 기관이 아닌 제 가족, ‘우리 당’이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이 ‘오케이’ 한 적도, 법이 허락한 적도 없는데 국민의힘 당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 권리라도 부여 받은 양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 운운하며 그를 국정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정작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직무 배제를 할 수 있는 국회 탄핵 표결에선 꽁무니를 빼놓고, 카메라 앞에선 초법적 조치를 궤변으로 늘어놓으며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겠다” 했다.

지난 주말 사이 펼쳐진 한 편의 국민 우롱쇼, 국민 기만쇼였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인가?

이렇게 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국민 대신 당의 이익을 택한 이들로부터 버려졌지만 서로가 서로를 버리지는 않았다. 시민들은 변곡점마다 국회 앞으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직후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은 장갑차를 막아 세웠고, 누군가는 아들 같은 군인을 끌어안아 총을 막기도 했다. 언론마저 장악될 위기에서도 시민들은 현장을 생중계하며 SNS로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후 펼쳐진 탄핵 집회에서도 시민들은 이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을 ‘유쾌’ 버전으로 맞받았다. 지난 주말 1020 젊은 세대로 가득했던 부산 서면 집회도 로제의 ‘아파트’뿐 아니라 윤수일의 ‘아파트’까지 나오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쉽게 꺼지는 촛불 대신 끝까지 꺼지지 않을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집회에 못 나오는 이들은 커피 선결제로 마음을 보탰다. 온라인과 SNS 상에서는 ‘12·3 취했나 봄’(서울의 봄 패러디)과 “나 사랑 때문에 OO까지 해봤다?!-계엄” 등 각종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돌며 풍자와 해학으로 연대를 표했다.

이에 비상계엄 초기 “K팝과 독재자, 한국의 두 얼굴”이라는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봤던 외신들도 점차 한국의 K-민주주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이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 “포용적 제도를 착취적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다. 전혀 놀랍지 않다”면서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철회 과정에 대해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굉장히 고무적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재확인”이라고 평가했다.

K-민주주의에 화답해 이제 검·경 사정기관이 K-법치주의를 보여줄 때다. 내란, 군형사상 반란, 직권 남용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한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체포를 지시하며 한 말이다.

"싹 다 잡아 들여."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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