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무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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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지난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 회견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은 개인적 스캔들과 총선 패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사과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정치권의 비판과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부메랑이 됐다. 대통령 측근인 홍철호 정무수석의 부적절한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사건의 전말은 대강 이렇다. 윤 대통령이 기자 회견에서 “모든 것이 제 불찰”이라며 머리를 숙이면서도 구체적인 사과 내용이나 이유를 밝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 변호와 정적 비난에만 몰두했다. 그러자 회견 말미에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가 대통령의 사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보충 설명을 해 줄 수 있는지 질문한 것이다. ‘맹탕 회견’의 정곡을 찌른 질문이었다. 홍 수석은 이에 대해 11월 19일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며 열을 올렸는데, 사실상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발언이었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여야 정치권과 지역기자단, 심지어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일간지들도 홍 수석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홍 수석이 발언 이틀 만에 사과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관계자의 일탈성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오래된 사건의 기억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대통령에 ‘무엇을 사과했나’ 정곡 찔러

한국 권력과 언론 사이 오랜 관행 깬 것

날카로운 질문·능숙한 답변 주고받아야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식 기자 회견에서 있었던 일이다. 방한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결국 발언권은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질문을 할 줄 모르는 한국 기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기자 회견은 대개 일방적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의례적 행사에 그쳤고, 질문자와 내용을 미리 조율해 각본대로 진행됐다. 사전에 준비된 내용을 벗어난 질문도 없고, 답변이 겉돌아도 추가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은 이런 식의 알맹이 없는 기자 회견의 전성기였다. 박 대통령 취임 1년 후 첫 기자 회견에서는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질문 내용을 사전에 취합해 홍보수석실에 전달한 사실이 폭로되어 한국 언론 전체가 조롱거리가 됐다. 박 대통령은 유난히 기자 회견을 기피해, 취임 후 2년 반 동안 단 두 차례 기자 회견을 여는 데 그쳤고, 그나마 기자 회견을 사전에 작성된 발표문을 읽는 낭독회로 바꿔 놓았다. 질문을 할 줄 모르는 기자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낳은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기자 회견과 질문 회피가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개인 성향과 관련이 있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대국민 소통이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21년 5월 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합의 내용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이때도 11년 전처럼 한국 기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인 한국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 타당하냐”라는 질문이나 미국의 청와대 도청처럼 한국 입장에서 제기할 법한 껄끄러운 질문도 미국 기자에게서 나왔다.

이쯤 되면 대통령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는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이 체질화한 직업 습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 기자 회견 해프닝은 이 어처구니없는 직업 풍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사건인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미사여구대로 옮겨 적을 뿐 사안의 허점을 찌르는 질문도, 비판적인 분석도 불가능하다. 홍 수석의 발언 역시 실수라기보다는 이처럼 오랜 불문율을 위반한 데 대한 대통령 측의 불만을 대변한 셈이다.

반대로 미국의 기자 사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은 기본적인 직업적 자질로 여겨진다. 대통령 역시 기자들과 늘 대화하면서 예리한 질문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가령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연평균 20회 이상 기자 회견을 열었고, 기자 회견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예상 밖의 질문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우리처럼 질문자와 내용을 미리 조정하는 식의 기자 회견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한 조율 시도 자체가 큰 정치적 스캔들이 되는 분위기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최근 우리는 ‘6시간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하면서, 언론의 보호막 아래 감춰져 있던 권력자의 적나라한 면모를 목격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무능, 독선, 부패, 권력 남용의 징후들이 언론과 대통령 간의 협조나 예우라는 명분하에 무시되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정치의 후진성은 정치 보도의 후진성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언론이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감시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늘 긴장하도록 하는 것만이 정치와 언론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해법이다. ‘무례한 발언’ 사건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개혁으로 가는 작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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