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위험한 신혼집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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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부동산팀 팀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신혼부부가 망하는 테크트리’라는 게시글이 화제를 모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역세권·대단지·신축 아파트의 입주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전세를 들어간다. 우수한 주변 인프라와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내 것’처럼 누리며, 전세로 아낀 돈을 인테리어나 해외 여행 등에 아낌없이 쓴다.

그렇게 2년이 지나도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5%만 더 대출받아 이 같은 삶을 연장할 수 있다. 마침내 4년이 지나면 갱신권이 종료돼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할 때가 온다. 이미 눈높이는 신축 대단지 수준으로 높아졌는데, 모은 돈이 없어 매매는 꿈도 못 꾸고 그새 전셋값마저 치솟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축이나 빌라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꼬인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소득·자산 수준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는 교훈이 담긴 글이다. 또 전세는 본인의 소유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하고, 부동산이란 자산은 대개 상승곡선을 그리기에 여러모로 작고 불편하더라도 매입부터 시작하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여러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요즘 청년들이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을 생각하면 일견 안타깝기도 하다. 신혼부부처럼 목돈이 없는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바로 청약통장이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어 주거 사다리의 디딤돌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청약통장은 무용지물이 됐다. 청약통장에 납입한 몇백만 원이라도 깨서 살림에 보태려고 통장을 해지하는 젊은 층이 갈수록 는다.

부산시가 청년을 위해 1만 세대 규모의 행복주택을 공급한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아직까진 허울에 불과하다. 대다수 행복주택이 대중교통과 동떨어진 도시 외곽이나 원도심에 위치해 엄두를 내기 힘들다. 이마저도 대부분의 호실이 20평 미만인 투룸에 가까워 아이라도 태어난다면 대책이 없다.

신축 대신 구축 매매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도 답안지는 아닌 듯하다. 물론 전세를 전전하며 본인의 자산 가치가 상승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양극화로 이제는 오르는 곳만 오르는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대개 누구나 수긍할 정도로 오를 만한 곳은 이미 높은 수준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청년들의 선택을 ‘망하는 지름길’이라며 꾸짖기만 해서는 변화가 생길 수 없다. 안락하고 포근한 나만의 안식처를 갖고 싶은 욕구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시스템화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일 테다. 당신들의 ‘행복한 신혼집’을 위하여.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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