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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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1967~ )

낮밤 없이 아슴아슴

들길 따라 걷는 거

눈 감고 그려봐도

시리도록 눈부신 거

불면의

새벽녘까지 실비처럼 젖어드는 거

밤마다 약속한 듯

가슴 한 조각 무너지는 거

맹맹히 흔들대는

허수아비 손짓 같은 거

아뜩한

그대 영혼에 둥우리 하나 걸고 싶은 거

-시집 〈아버지, 뉴스를 보신다〉(2013) 중에서

시조 형식으로 사랑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놀랍다. 일찍부터 시조로 사랑을 노래한 것은 많았다. 개인의 절절한 감정을 정형적인 틀에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절제된 감동을 주는 바가 컸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정형시 형식으로 담는 것은 드물다. 이것은 압축된 언어로 진리를 읊조리는 형국 아닌가?

민달 시인에게 사랑은 우선 ‘들길 따라 걷는’ 것, 눈이 ‘시리도록 부시’어 ‘불면의 새벽녘까지’ 깨어있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 부분인 풋풋함과 설렘을 직관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난 사랑에 대해서는 ‘가슴 한 조각 무너지는’ 것, ‘

맹맹히 흔들대는

허수아비 손짓’, ‘그대 영혼에 둥우리 하나 걸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한다. 사랑의 쓴물을 경험한 이에게 생기는 안타까움과 절절함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시조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낯설다 못해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여 사랑의 본질을 노래하는 시조는 차원 높은 격조가 된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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