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벼랑 끝에 매달린 존재들, 누가 손잡아 주나
올 한 해 돌이켜보면 민생고 시달려
우리 경제·외교·안보도 어려움 직면
격한 정쟁으로 국회 일하지 않은 탓
대통령 국정 수행 동력 저하도 한몫
잡은 손 끝내 놓지 않은 소방관 귀감
여야·위정자 위기 극복 온 힘 쏟아야
2일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송상현광장에서 ‘희망 2025 나눔캠페인’ 출범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부산시민의 나눔과 온정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낼 ‘사랑의 온도탑’이 점등됐다. 이번 캠페인은 연말연시 두 달간 총 108억여 원을 모금할 계획이란다. 같은 날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앞에서는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도 열렸다. 두 행사 소식을 접하면서 또다시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연말이다. 갑진년(甲辰年) 정초에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주위에 나누며 새해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올해가 좋은 기운 가득한 ‘청룡의 해’인 만큼 희망을 노래하며 국가·사회적인 상승 국면을 기대했지만, 한 해의 끄트머리에 놓인 현실은 그렇지 않아 서글프다. 이는 국민의 삶이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신세와 다름없어서다. 그런데도 민생을 절박한 위기에서 건져 올리려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를 볼 수 없으니 문제다.
이 땅의 젊은 층은 부의 양극화와 교육 격차 속에서 힘겹게 성장한 끝에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쉬는 젊은이가 숱하다. 아예 구직을 포기한 청년이 속출하고, 그 비중은 날로 커진다. 자영업자는 소비 위축으로 경영난을 겪으며 가겟세 인상을 감당하기 힘들어 폐업하기 일쑤다. 주택가는 물론 번화가와 대학가조차 빈 점포가 즐비한 이유다. 대다수 서민은 늘어난 가계빚과 고금리·고물가에 신음한 지 오래다. 어렵게 모은 돈이나 은행 대출금으로 전셋집을 마련했으나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명쾌한 해결책 없이 현재 진행형이다. 다양하고 심각한 이런 현상은 인구 급감과 경기 침체가 심한 비수도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 경제와 외교·안보 역시 백척간두에 선 절체절명의 상황이기는 마찬가지다. 올 들어 수출과 내수 부진을 알리는 통계 발표가 잦은 데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자꾸만 낮아진다. 한국 경제는 내년에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다음 달 20일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 폭탄’을 앞세운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국내 경제와 외교에 어려움이 가중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핵 위협을 높이는 북한과 러시아 간 밀착과 군사협력 강화는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가는 실정이다.
반면 이 같은 내우외환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는 정치권의 노력과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집권당 국민의힘이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사로잡히고 자기당 이익만 좇으며 벌이는 격렬하고 오랜 정쟁 탓이다. 양당은 대화나 타협을 모른 채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데 뒷전이다. 그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지경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 국가·국민의 대표라는 신분을 잊은 듯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의혹 해소와 국정 쇄신은커녕 김 여사 감싸기에 급급한 일개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 폭락과 민심 이반에 이어 일부에서의 대통령 퇴진론까지 초래해 국정 동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의정 갈등이 10개월째 지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싶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우 자신의 여러 사법 리스크에 대한 방탄에 혈안이 돼 당력을 낭비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갈등과 계파 싸움에 휩싸여 당이 야권의 일방 독주에 끌려다니며 무능함을 드러내도 손을 쓰지 못한다.
여야와 위정자들의 실태가 이러니 민생과 직결되고 국가 존망이 걸린 국내외 주요 현안들에 적절하고 원활한 대처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매달려 추락 일보 직전인 나라와 민생에 손을 내밀어 잡아 끌어올릴 구원자가 없는 셈이다. 국민의 실망과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궁지에 몰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소외계층마저 정치를 걱정하는 판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정치권은 부끄럽지 않은가 보다.
지난달 27일 눈길 교통사고로 11m 높이 교량에서 추락 위기에 빠진 60대 운전자를 난간 밑으로 맨손을 뻗어 잡고는 추위 속에서 무려 45분간 버티며 구조에 성공한 경북 한 소방관의 영웅담은 큰 울림을 준다. 이러한 소방관의 투철한 소명감이 여야에 요구된다. 지금은 이전투구를 일삼을 때가 아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과 경고음은 들리지 않는가. 첩첩산중인 난제 해결에 초당적 협력으로도 힘이 모자랄 시국이다. 내년 을사년(乙巳年)엔 국가 이익과 안녕, 국민 행복을 최우선하는 자세로 환골탈태하길 바란다. 한심한 작태를 이어간다면, 2026년 지방선거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