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남편’ 아닌 ‘대통령’이어야 한다 [데스크칼럼]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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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부 부장

재임 중 아들 구속 시킨 YS와 DJ
'아버지' 아닌 '대통령'으로 결단
'죄의 유무' 보다 민심부터 챙겨야
역사에 남을 '용기있는 결단' 필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 씨(오른쪽)와 홍걸 씨가 지난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에서 참배하고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 씨(오른쪽)와 홍걸 씨가 지난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에서 참배하고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지난달 자전적 에세이를 냈다. 현철 씨는 문민정부 시절 ‘소통령’으로 불리며 국정개입·뇌물수수 등의 의혹을 받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됐다. 그는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언제나 여론을 듣고 국민들의 마음을 듣고자 했던 아버지는 자식에게는 매정했다. 한보 사건에 책임이 없음에도 수사 중단을 지시하지 않았다. 검찰이 별건 수사를 통해 제물로 삼겠다고 해도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보 사건(한보그룹의 부도를 계기로 드러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과의 무관함을 자신한 현철 씨는 1997년 5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 “이틀 정도 조사받으면 될 것”이라고 YS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검찰은 한보 사건과 관련한 혐의를 찾지 못하자 대선자금 문제로 그를 구속했다. 현철 씨의 당시 심정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끝까지 지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대선 자금 문제는 나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검찰총장까지 교체하면서 엄중한 수사를 지시하고 결국 사법처리까지 이르렀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아버지에게 배신감까지 들 정도였다. 아버지는 나를 면회하러 간다는 어머니까지 말리셨다."

현철 씨가 보석으로 풀려났을 때 YS가 했다는 말도 소개했다. “그래 고생했고 정말 할 말이 없다. 내가 잘 몰랐고 힘이 없어서 그랬다”.

YS의 후임인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자신의 두 아들이 비리에 연루돼 재임 중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DJ는 자서전을 통해 당시를 회상했다. ‘봄날, 몸이 아팠다’라고 소제목을 달았다.

"둘째 아들 홍업과 막내 홍걸에 대한 비리 연루 의혹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나는 아들의 결백을 믿었다. 내가 아는 홍걸이는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가."

홍걸 씨가 사업가로부터 청탁과 함께 거액의 주식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DJ는 “죄가 있으면 벌을 받으라”면서 미국에 있던 홍걸 씨를 귀국시켰다. 그는 귀국 이틀 만인 2002년 5월 18일 구속됐다.

"나는 발밑이 꺼지는 듯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아내는 구토까지 했다. 아내마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봄꽃이 지고 푸른 잎들이 돋아났건만 청와대 뜰에는 정적만 고였다. 아내와 나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한 달 쯤 지난 6월 21일엔 둘째 홍업 씨가 구속됐다.

"아들 둘을 감옥에 보낸 아버지가 있었던가. 국민 볼 낯이 없었다."

DJ는 이날 오후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 왔으며,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으로 살아왔습니다.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모두가 저의 부족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YS와 DJ는 아들이 구속된 이후 ‘식물 대통령’으로 불렸다.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데다 가족의 비리로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자식을 감옥에 보낸 두 전직 대통령의 결단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YS와 DJ는 죽을 때까지 아들들이 감옥에 갈 만큼 큰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아들을 벌줘야 한다고 아우성 쳤고, 두 사람은 국가적 위기와 국민 분열을 막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았다. 그런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그들의 가족을 겨냥한 더이상의 정치보복은 없었다.

당시 YS와 DJ는 아들들로부터 원망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현철 씨는 “‘아버지’가 아닌 ‘정치인’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우러러본다. 홍업·홍걸 씨도 자신들의 구속을 지켜만 본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YS와 DJ를 ‘실패한 대통령’이나 ‘무정한 아버지’로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대부분 김건희 여사로부터 비롯됐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특검이나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만한 혐의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누구보다 민심을 잘 읽었던 YS와 DJ가 ‘죄의 유무’를 떠나 자식들에게 가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후세는 국가를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대통령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 여사도 훗날 ‘남편’을 원망하기보다는 ‘대통령’으로서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자부할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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