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블록체인 혁신은 인식 전환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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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홍열 비댁스 대표·변호사

가상화폐 일종인 ‘스테이블 코인’
한국은 금기시… 시도조차 안 해
코인 사기와 연결 짓는 인식 때문

인프라·규제 탓하는 건 변명 불과
‘블록체인 특구’ 자리매김 위해선
서비스·상품 소개 자리 마련돼야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혁신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 중에는 현재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데 굳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필자가 블록체인 특구에 본사를 둔 공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을 발행·유통해 새로운 금융 혁신을 일으키자고 설득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열린 부산 소재 대학 교수들의 토큰증권 관련 연구 토론회에서도 우리나라에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아 새로운 금융 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드는 것은 헛수고에 그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는 공기업 사람들도 만났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금융 관련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에 대한 성토로 끝날 일이라며 토론회 자체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든 혁신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의 몫이었지 정부 기관이 주도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규제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보다 늦게 나타났고, 인프라는 점진적으로 갖춰지고 발전해 나갔을 뿐 인프라가 갖춰지고 나서 혁신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기술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선택받은 끝에 자연스럽게 인프라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외국에서는 가상화폐의 일종인 스테이블 코인을 블록체인 기술이 불러올 혁신의 하나로 꼽는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를 기초 자산으로 해 1달러를 맡기면 1코인을 주는 식인 USD코인(USDC)과 테더(USDT)다. USDC를 가진 투자자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다른 코인을 사들이거나 상품 값을 치르는 데 이용할 수 있다. 더는 해당 코인이 쓸모가 없어지면 도로 맡기고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 상품권을 사서 물건을 사는 행위나 충전식 선불카드를 쓰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거래 내용이 블록체인 체계에서 뚜렷하게 기록·관리되며 결제가 곧바로 이뤄지는 부분이 다르다. PG(전자지급결제대행)와 같은 중간 업체가 필요 없어 중간에 떼이는 수수료가 없고 실시간으로 돈을 받을 수 있어 대금 수령이 빨라진다. 이는 국제 교역에도 적용할 만하다. 서울 동대문 의류업자들이 외국에 옷을 팔고 받은 돈으로 USDC나 USDT 같은 스테이블 코인을 쓴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처럼 시장은 벌써 그 효용을 알아챈 상태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은 기존의 지급결제 체계에 혁신을 불러온다. 만약 티몬-위메프 사태 때 스테이블 코인을 썼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이미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위한 규제가 마련돼 있으며 은행이나 신탁회사를 통해 엔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유통되고 있다. 부산이 경쟁 도시로 주목하고 있는 홍콩에서도 이미 여러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유통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에서도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서는 사실상 금기시될 정도로 시도조차 안 되고 있다. 이는 한국만 스테이블 코인의 효용에 대해 알지 못해서도 아니고 기술이나 인프라가 없어서도 아니다. 블록체인을 코인 사기와 연결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혁신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스테이블 코인은 그동안 코인과 토큰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온 끝에 현실에서 적합한 사용처를 찾게 되었다. 그렇듯이 스테이블 코인을 비롯해 토큰증권, 각종 실물자산토큰(RWA) 등을 모두 블록체인 기술의 결과물로 보고 민간 영역에서 자유롭게 시도하고 경쟁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자리매김하려면 이런 시도와 경쟁이 활발히 이뤄지는 장(場)이 돼야 한다.

인프라나 규제 탓만 하는 건 변명일 뿐이다. 경연대회·콘퍼런스·토론회 등 어떤 형태든 상관없이 블록체인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고 논의할 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쟁과 발전의 정반합이 생겨나고, 기업이 직면하는 장애물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부산시가 직접 나서거나 부산 소재 유관기관, 정치 인사들을 적극 활용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 지역 금융기관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예대 마진을 통해 지역민들로부터 얻은 이익은 결국 부산이라는 지역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이 소멸하면 결국 지역의 금융기관도 쇠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관련 행사나 기업 투자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 기업을 규제라는 핑계로 절벽에 밀어놓고 살아 돌아오는 자만 키우겠다는 방식으로는 부산이 ‘노인과 바다’ 신세를 면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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