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자체장 위상 높아졌지만… 30년 지방시대 명암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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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택 서울지사장

내년 지방자치제 시행 30년 앞두고
기초·광역단체장 위상 크게 높아져

윤 정부 무능과 정치권 불신 가중돼
차기 대권서 시도지사 집권 가능성

지자제 실천력 강한 인물 선출하고
지방정부 공존공영해야 성공할 듯

내년이면 이 땅에 지방자치제도가 본격 도입된 지 30년이 된다. 공자가 서른 나이를 ‘이립(而立)’이라고 했듯이 우리 지방자치제도 흔들림없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시에 지방 시대의 중추인 지방자치단체장의 위상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30년 된 지자제에도 명암이 공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명실상부한 지방화 정착에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다.

1995년 처음 지자제가 도입됐을 당시에만 해도 자치단체장의 위상은 높지 않았고, 그다지 관심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광역단체장은 물론이고 일부 기초단체장도 국회의원 이상의 예우와 관심을 받게 됐다. 여기에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면서 지자체장의 급이 확실하게 달라졌다. 실제로 서울·수도권의 몇몇 기초단체는 중진 국회의원 출신들이 단체장을 맡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치 지망생들은 아예 국회의원 도전을 포기하고 바로 지자체장 출마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은 ‘광역단체장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시도지사의 인기가 높다. 차기 대권주자 중 광역단체장 출신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단적인 예이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선 “차기 대권은 광역단체장 출신이 거머쥔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이다. 하기야 미국에선 조지 W 부시(텍사스), 빌 클린턴(아칸소),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 지미 카터(조지아) 등 주지사 출신 대통령이 다수 배출됐다.

차기 대통령선거(2027년 3월 3일)까지 아직 822일(2일 현재)이나 남아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데다, 여야 내부 사정이 급변하면서 ‘대선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야의 전현직 시도지사 출신들이 차기 주자로 급부상한 상황이다. 이들 중 선두 주자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이다. 그는 각종 기관의 차기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이미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상태이고, 대장동·대북송금·경기도 법인카드 등 아직도 재판이 3건이나 남아 있어 미래가 불투명하다.

그래서 최근 자주 거론되는 주자군이 이른바 ‘3고(高) 3김(金)’이다. 이들은 모두 전현직 광역단체장들이다. 여권에선 고려대 출신 현직 3인방인 오세훈(서울), 박형준(부산), 홍준표(대구) 시장 등 ‘3고’가 있고, 야권에선 김동연 경기지사와 김경수·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3김’이 있다. 오세훈·홍준표 시장은 2026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곧바로 대권가도에 나설 전망이고, 박형준 시장은 3선 부산시장 고지를 먼저 밟은 뒤 상황에 따라 대선 출마 가능성도 있다. 김태호(경남), 원희룡(제주) 전 지사도 잠재 후보군이다.

야권에선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동연 경기지사가 가장 강력한 ‘이재명 대항마’이고, 친노·친문 핵심인 김경수 전 지사는 내년 초 귀국한 뒤 대권행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김두관 전 지사도 조만간 정치 재개에 나설 방침이다. 현재 거론되는 시도지사들은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을 모두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차기 대권이 시도지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현 정국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기력한 국민의힘과 몰염치한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정치와 행정 경험이 풍부한 광역단체장들이 대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완전한 지방자치 시대를 열기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무능한 정부’와 ‘갑질 국회’가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거 중앙 집권시대엔 대통령의 한마디로 대형 국책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정치권의 발목잡기로 가덕신공항 건설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 굵직한 지역 사업들이 계속 지연되거나 무산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주에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조속 처리를 촉구하며 엄동설한 속 국회 앞에서 사흘간 천막농성을 벌였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러다간 머잖아 지방자치제 폐지 얘기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보다 먼저 지방시대를 연 영국, 프랑스, 독일이 중앙 정부 기능을 오히려 강화하거나 지자체의 수를 줄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차기 대선에선 지자제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강력하게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을 반드시 뽑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정부도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인식을 버리고 공존공영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 확실하게 바뀌어야 지자제가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다.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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