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이제 여름에 유럽 못 가나?
플랫폼콘텐츠부 선임기자
올 초 결혼 30주년을 맞아 여름에 부부 동반 유럽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유럽 주요 관광도시의 초봄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다는 외신 보도를 보고 내년 1월로 늦출 수밖에 없었다. 실제 남유럽인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는 4월에 36.9~38.8도라는 유례없는 고온을 기록했다. 6월 로마 등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최고 기온은 40도였다. 7~9월 기온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행에서 날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 사람은 맑은 날씨를 좋아하지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기온이다. 아무리 하늘이 맑더라도 기온이 너무 높으면 여행에 부적합하다. 글자 그대로 ‘더운’ 정도면 참을 수 있지만 ‘찌는 듯 덥거나’ ‘타는 듯 뜨겁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문제는 해마다 기온이 크게 높아져 앞으로 여름철 유럽 여행은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0년 프랑스 파리의 여름 기온은 50도에 이를 전망이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남부의 여름 바캉스 휴양도시는 지금까지 뜨거운 태양을 관광의 호재로 삼았지만 앞으로는 오히려 관광객을 몰아내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EU의 유럽여행위원회(ETC)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0%는 ‘여행지를 고를 때 날씨를 가장 중시한다’고 대답했다. ETC는 ‘이번 조사 결과는 여행객이 여행지를 선택할 때 점점 극단적인 날씨에 매우 신경을 쓴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여행보험사인 인슈어앤드고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여행객 중 71%는 ‘2027년쯤이면 유럽에서 여름 여행은 너무 더워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브리스톨대학교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2100년쯤이면 유럽 전역의 인기 여행지는 기록적인 폭염 때문에 손님을 모두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극도의 고온이 이어지면 항공기 이용에도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날씨가 너무 뜨거우면 비행기가 뜨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활주로에서 적당한 공기 밀도가 유지돼야 하는데, 지나친 고열은 밀도를 떨어뜨린다. 이륙을 위해 승객의 짐 무게에 제한을 두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실제 미국 연방항공청은 올해 각 항공사에 ‘올여름 기온이 상승하면 항공편 출발 지연이나 취소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통지했다.
기후변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여름에 유럽 여행을 가려는 사람은 일찌감치 계획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여름철이면 관광객으로 붐비던 로마, 파리 등 여행 인기 도시는 ‘유령도시’처럼 텅 빈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여름에는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까.
남태우 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