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산업 키울 돈, ‘그린워싱’ LNG로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2018~올해 상반기 녹색채권
첫 전수 조사 통해 사용처 분석
재생에너지 비중 10%도 안돼
상당부분 화석연료 LNG 투자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행된 녹색채권은 재생에너지보다 LNG 발전에 더 많이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의 목적이 녹색산업 육성이지만, 태양광·풍력·수력을 합친 것보다 화석연료인 LNG발전에 더 많이 쓰였다는 의미다.
국내 녹색채권은 친환경 자동차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 비중이 크고, 에너지 관련 비중이 작다는 특징도 보였다. 전체 발행액 10%가 건축과 개발 사업에 쓰였는데, 소비지향적인 시설들도 포함돼 있다.
27일 <부산일보> 취재진은 한국거래소에 등록된 국내 녹색채권 전수 조사를 벌여, 각 채권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구별해 분석하고 이를 부산닷컴(www.busan.com)에 공개했다. 분석 대상은 2018년 국내 첫 녹색채권부터 올 상반기까지 6년간 발행된 361건의 채권이며, 총발행액은 33조 5561억 원이다.
녹색채권 사용처에 대한 전수 분석은 이번이 사실상 첫 시도이다. ESG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대로 녹색채권에 대한 주목도는 커졌지만, 정작 채권의 사용처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학계나 언론 등에서도 녹색채권은 발행 규모 정도만 다뤄지는 수준이다.
정부 기관 등에서 일부 통계를 작성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자원 순환’ ‘생물 다양성’ 등 기대 효과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통계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관련 용어도 생소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녹색채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과 프로젝트에 쓰이고, 전반적인 경향성은 어떠한지 파악하기 힘든 구조였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금융팀 박남영 책임연구원은 “녹색채권은 친환경적이라는 인상 때문에 일단 많이 발행되는 것이 마냥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일부 채권에 대해 그린워싱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녹색채권 쓰임새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용처에 대한 전수 조사 결과, 국내 녹색채권의 명확한 특징들이 드러났다. 전체 채권 발행액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되지 않는다. 녹색채권은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에도 상당한 투자를 했는데, 모두가 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그레이수소’ 사업이었다. 국외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 산업이 녹색채권의 가장 주요한 투자처로 꼽힌다.
국내 산업 현장에서 녹색채권을 활용하는 경우는 절반 이상이 전기차 등에 쓰이는 배터리 관련이었다. 데이터센터·쇼핑몰·고층 타워 등 전력 소비가 큰 시설을 짓는 데에도 녹색채권이 투입됐다.
자금의 흐름이나 외부 공시 내용 등에서 신뢰성을 훼손하는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채권마다 탄소 저감 효과 등이 다르게 표기돼, 공시 내용의 허술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녹색채권이 특정 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녹색 프로젝트 투자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지배력 강화가 실제 목적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
국내 녹색채권 중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발행한 규모는 10조 5955억 원이다. 전체의 31% 정도를 차지하는 적지 않은 비중이지만, 공기업이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논란의 LNG 발전소 건립 사업이었다.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고동현 팀장은 “녹색채권은 언급되는 것에 비해 손에 잡히는 정보가 없고, 논의를 키워나갈 재료 자체가 부족하다”며 “구체적인 사용처 분석 결과는 녹색채권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그리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녹색채권
재생에너지, 기후변화 등 친환경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친환경적 금융상품으로 취급돼 정부 지원을 받으며, 시장의 반응도 좋다. 기업들도 환경 책임 경영의 실천 근거로 녹색채권 발행을 제시한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