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채권 실질적 용도 밝힐 첫 데이터베이스 [33조 녹색채권 어디에]
개별 기업 자료까지 취합해 전수조사
녹색채권은 대표적인 ESG채권으로, 한국거래소 ESG채권 플랫폼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프로젝트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정의한다. 신재생에너지가 먼저 언급된 것은, 탄소중립 실현을 중요시하는 채권이라는 걸 시사한다. 이후 생물다양성 강화를 포함해 다양한 친환경 활동까지 투자 대상을 넓혔다.
2007년 유럽투자은행(EIB)이 재생에너지 투자 목적으로 채권을 발행하면서 처음으로 녹색채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초창기 녹색채권의 성장 속도는 더뎠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는 급성장하는 양상이다. 기후위기의 현실화가 이유였다.
■왜 사용처 파악이 어렵나
한국거래소에 등록된 첫 녹색채권은 2018년 산업은행이 발행했다. 태양광 발전과 복선전철 선로 설치 등에 쓰였고, 발행액은 3000억 원이었다. 이후 녹색채권 발행액은 편차가 있지만 꾸준히 늘어, 올해 상반기 누적 발행액이 33조 원을 넘어섰다.
2020년 국내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서, 기본적인 체계가 세워졌다. 환경책임투자종합플랫폼 등에는 녹색채권 현황 등이 공개돼, 월별·연도별 발행 채권 수와 발행액 등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녹색채권의 구체적인 용도 파악이다. 녹색채권은 10대 카테고리(에너지효율·신재생·청정운송·기후변화 적응 등)로 분류된다. 분류 기준 자체가 추상적이고, 실제 용도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LNG발전소 건립의 경우 발전 활동인데 에너지효율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인터넷망을 설치하거나, 공장에 에너지효율이 좋은 설비를 도입하는 것도 에너지효율로 분류된다. 2차 전지 관련 공장 설립, 전기차 리스 제공, 철도 건설 등은 성격이 다른 활동이지만 모두 청정 운송에 속한다. 현행 통계만으로는 녹색채권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온실가스감축, 기후변화 적응, 생물다양성 보존 등 6대 환경 목표로 분류하는 기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온실가스 감축이라서 분류 효과는 미미하다.
■어떻게 조사했나
<33조 녹색채권 어디에>는 녹색채권 실질적인 용도와 전반적인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첫 번째 데이터베이스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올라온 개별 녹색채권 공시자료를 모두 분석했다. 공시자료가 부실하거나 용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발행기업의 개별 자료나 당시 보도 등을 조사했고, 발행사를 상대로 취재했다. 33조 5561억 원의 녹색채권 용도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크게 5대 분야로 용도를 나눴고,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파악했다. 직관적으로 쓰임새를 파악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분류 기준을 세웠다.
발전 분야(7조 7462억 원)는 연구비나 인프라 조성 등을 제외하고 직접적으로 에너지 생산에 관여한 것만 포함했다. 산업 분야(11조 1652억 원)는 태양광 공장 설립, 전기차 R&D 등 관련 산업 육성에 쓰인 것을 묶었다.
이동수단 분야(7조 7407억 원)는 전기차나 전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하기 위한 자금이다. 대부분 전기차 리스와 렌탈 등의 금융서비스였다.
친환경 건설(3조 4277억 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친환경 건물 인증을 받으면 건설 자금을 녹색채권으로 채울 수 있다.
오염 배출량을 줄이거나 공장 설비 등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친환경과 탄소배출 저감에 직접적으로 쓰인 녹색채권은 환경 분야(3조 3764억 원)로 분류했다.
한국법제연구원 ESG법제팀 최유경 박사는 “녹색 채권의 현황과 실제 성과 등에 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는 채권의 이름으로 녹색 여부를 가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 논의를 성숙시키려면 종합적이면서 구체적인 판단 자료가 필요하다”고 전수 조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